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024)

중앙 미드필더 (40명)

현역 국가대표급 - 기성용(셀틱), 구자철(볼프스부르크), 이용래(수원),김정우(상무),김재성(포항),
신형민(포항), 김두현(경찰청), 백지훈(수원), 오장은(수원), 김남일(톰 톰스크),

이호(울산), 김상식(전북), 조원희(광저우)
주목할만한 선수 - 하대성(GS),박희도(부산),박현범(수원), 황진성(포항),김성준(대전),정혁(인천),

조재철(성남), 김근철(부산),안성남(광주),이관우(무직),고명진(gs), 이현승(전남)

프로팀 유망주 - 윤빛가람(경남), 김영욱(전남),김귀현(벨레즈), 윤일록(경남), 이종성(수원),

조지훈(수원), 문기한(gs), 이승기(광주), 김기희(대구),박종우(부산),이명주(포항)

아마추어팀 유망주 -남승우(연세대),최성근(고려대), 이중권(명지대), 안진범(고려대)

현역 국가대표급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1)

기성용(Ki Sung Yueng)

나이 : 23

신장 : 187cm, 75kg

출생 :광주광역시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클럽 : 셀틱 FC(Celtic FC) -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

클럽 경력 : 순천중앙초, 광양제철중, 금호고,gs(06~09), 셀틱 FC(2010~)

우승 경력 : 2006 K리그 컵대회 우승

개인 경력 : A매치 36경기 출장 5골 기록 중

2001 차범근 축구대상 수상

2004 도요타컵 MVP 수상

2008 윈저어워즈 한국 축구 대상 베스트 일레븐

2008, 200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소개 : 나이로 치자면 유망주로 소개해야 할 선수이나 이미 유망주급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187cm의 장신, 너른 시야에 탁월한 킥력, 유연한 몸놀림을 갖추었다.

몸싸움과 수비력이 다소 약하나 자신의장점인 정확한 롱패스로

이를 보완하고 있다. 최근에는셀틱에 있으면서 몸싸움과 수비력을 보완하고 있다.

기성용은 축구 선수 출신기영옥의 아들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축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호주로유학을 떠났다.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에서

축구를 배울 수 있는데다영어를습득할 수 있다는아버지의 판단이 호주 유학을 결정지었다.

기성용은 그곳에서4년간 지내며 축구실력을 향상시켰고 동시에 영어도배웠다.

유학 초기 의사소통이 안돼 인종차별을 받기도 했으나자신의 실력으로 이를 극복했고

해를 거듭하면서영어실력도 늘자 동료들도그에게가까이 다가갔다.

4년간의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06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k리그에 진출,

19살의 나이에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첫 시즌에는 당시 감독이었던 이장수 체제에서

주목받지 못하며 2군에 머물렀으나 이듬해 그가 물러나고 귀네슈 감독이 지휘봉을 잡자

탁월한 잠재력을 인정받아 1군으로 올라와 출장기회를 잡았다.

동시에 캐나다에서 열린2007 20세 이하월드컵에서 탁월한기량을 보여주자

언론에서도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2년 만에 라이징 스타로 거듭난 그는

이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2008시즌부터절정의 기량을 과시하였다.

탁월한 롱패스와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한 그는

절친 이청용과의 찰떡궁합같은 호흡으로 2008 k리그 우승을 목전에 두었으나

결승전에서 차범근 감독이이끌었던수원에 발목을 잡혀 준우승에 머물러 분루를 삼켰다.

그러나언론은 수원의 우승과 함께 기성용, 이청용의 탁월한 기량을 앞세운

gs의 선전도 주목하였다. 이는 이제 갓 21살에 불과한 기성용 같은초대형 유망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방증이었다. 아쉽게 우승을 놓쳤지만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얻은

gs는 2008시즌의 돌풍에 힘입어 전관왕 목표를 세웠다.

기성용, 이청용 등 초대형 유망주들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바랐던2009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카타르 팀에 덜미를 잡혀

8강에 머물렀고연고이전 후 첫 우승을바랐던K리그에서도

플레이오프전에서 홈에서 전남에 덜미를 잡혀 4위로 낙오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문에 2010 AFC챔피언스리그 티켓조차 얻지 못하는 치욕을 맛봤다.

기성용도 더 이상gs에 머물 마음은 없었다. 시즌중에도 유럽 진출에 대한 말이 많았었다.

2007 청소년 월드컵, 2008 베이징올림픽,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의 맹활약으로

유럽 진출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는 언론과여론의부추김이 많았다.

기성용도 마음 속에 품었던 유럽진출의갈망을 언론을 통해 직접 표출하기도 했다.

빅리그 구단들의 러브콜 소식도들려와 기성용의 유럽진출이현실이 되는 듯했다.

그리고 2010년 1월진짜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바랐던 유럽은 아니었다.

그가 간 곳은스코틀랜드의 셀틱. 스코틀랜드 최고의 명문팀이었다.

그러나대부분의 축구팬들은그의 판단에 매우 아쉬워했다.

셀틱이 훌륭한 구단이란 건 맞지만그가 성장할 수 있는 수준의 리그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셀틱, 레인저스를 제외하면 수준이 매우 낮은 구단들로 구성된

스코틀랜드에서 아무리잘해봤자 성장이 더딜 것이라고 하였고

빅리그에 진출해봤자 스코틀랜드에서 갈고 닦은 기량이

전혀 통하지않다고 하였다.

일본의 에이스였던 나카무라 슌스케를 언급하지 않아도 스코틀랜드를 거친 선수들이

빅리그에서 성공한 전례가 매우 드물다는 근거도 내세웠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데뷔시즌에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미드필더이자 스코틀랜드 유망주,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스콧 브라운과의 경쟁에서완전히 밀렸다.

간간히후반 교체투입되어 날카로운 킥력을 과시하였으나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수비력에

약점을 드러내자 토니 모브레이 셀틱감독은 그를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기성용은 국가대표에 꾸준히 선발되었다.

그의 재능을 능가하는 선수가 아직 나오지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경기감각이 많이 떨어진 탓인지 예전만큼의탁월한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도 없어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선발로 출장하였다.

다행히원정 평가전에 자주 투입된 덕분에다소 나아진 모습을보이며 팀의 16강 진출에기여했다.

대표팀에서 돌아온 그는 성적부진으로 잘린 토니 모브레이 감독의 후임으로 온

레넌 감독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스콧 브라운을 밀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여전히 수비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은 그는

여전히 벤치를 지켜야만 했다.

이에 화가난 기성용은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는 폭탄 발언을 던져 논란을 일으켰다.

설상가상, k리그 시절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터키의 세뇰 귀네슈 감독이 기성용을 원한다는 말을꺼내자

이에 대한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기성용에게 닥친프로 생활최고의 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뜻밖의 천운이 그에게 찾아왔다.

절대적인 주전이었던 스콧 브라운이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것이다.

레넌 감독은 벤치 멤버 기성용을 주전으로 투입하였다.

뜻밖의 기회를 얻은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겠다는 듯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때마침차두리가셀틱에 합류하자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그는 거듭되는 경기에서 득점 포인트를 기록하며 감독의 눈도장을 받는 데에 힘썼다.

덕분에 2010년 10월에는 이 달의SPL 유망주선수로 뽑히는 영광을 얻었다.

달라진 모습으로대표팀에 합류한그는 조광래 감독의 중심 멤버로 기용되며 팀을 이끌었다.

2011 아시안컵에서는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풀타임 출장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아쉽게 일본에 승부차기에서 패해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그의 실력은

대표팀에없어서는 안될것으로 다시 한번인정받았다.

향후 전망 : 기성용은 아시안컵 4강 일본전에서 보여준 원숭이 세레모니 논란으로

일본 언론과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지만

욱일승천기에 대한 대응이라고 언급하자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FIFA에서도 그의 세레모니는 징계할 가치가 없다고 말해 그의 세레모니는 문제시 되지 않았다.

그러나축구협회에서는 기성용이 스코틀랜드에서 당한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로 세레모니를 펼쳤다고 말해

일본언론과 스코틀랜드 현지 언론에서는 이를 집중 비난하였다.

이에이성을 잃은 한일본 네티즌은

기성용의 트위터에 인격모독에 가까운글을쏟아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때문에 기성용이 상처를 받는다거나 팀 내에서 따돌림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K리그 시절자신의 플레이를비난한 네티즌들에게 '그럼 너희도 한번 뛰어보든가'라는

말을 남겨 논란을 일으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적이 있지만 그의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이것이 그의 잘못으로 팀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고 스스로도 떳떳하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일본 언론과 네티즌들의 끈질긴 비난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현지에서는 다소 논란이 일었으나 예전에도 이런 인종차별 논란이 종종 있어왔기에

한순간에 부는 바람 쯤으로 끝날 것이다. 이런 걸로흔들릴 선수는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계속된 강행군으로 휴식을 취해야 할 상태이지만

최근에도 좋은 활약을 보이며 팀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다.

스콧 브라운이 복귀한다면 그와의 치열한 주전경쟁이 예상되나

기성용의 진가를 확인한 레넌 감독이 그와 스콧을동시에 활용하는 포메이션을 구상할 수 있다.

그때 가봐야 알겠으나 기성용의현재 활약을 봤을 때

기성용은 몇년뒤더 큰 무대로 이적하거나 팀의 중심축이 되어 셀틱의 우승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3)

구자철(Koo Ja-Cheol)

나이 : 23

신장 : 183cm, 74kg

출생 : 충북충주시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클럽 : VfL 볼프스부르크(VfL Wolfsburg-Fußball GmbH) - 독일 분데스리가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4)

클럽 경력 : 충주 중앙초, 청주 대성중, 보인고, sk(07~10), VfL 볼프스부르크(2011~)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 A매치 16경기 출장 7골 기록 중

201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미드필더

소개 :될 성 부른 새싹에서 꽃망울을 터뜨린대표팀의 중심.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동갑내기 기성용에 비해 뒤쳐진 느낌이었으나 2011 아시안컵에서의 대활약으로

독일 분데스리가까지 진출, 국내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반열에올라섰다.

수준급의 볼터치와 패스, 너른 시야, 활동량, 날카로운 슈팅 등을 고루 겸비한

중앙 미드필더 자원이 적었던 우리나라 대표팀에 이를 모두 갖춘구자철이 등장함으로써

탄탄한 중앙 허리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구자철은 2007년 제주를 연고로 하는팀에 데뷔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간간이학원축구에서나 이름을 날렸던 무명 선수였으나 k리그에서잠재력을 보여줘

각급 청소년 대표팀에 꾸준히 발탁되었다.2008년에는허정무 감독이 지휘하는 국가대표팀에깜짝 발탁돼

동아시아 대회에 참가, 중국과의A매치에 데뷔하기도 하였다.

2009년홍명보 감독의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에서는핵심 멤버로서 8강 진출에 견인하자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으며 향후 대표팀의 중심이 될 선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 무렵 소속팀에서도 팀의 핵심으로서 당당히 활약하니 K리그에서의 활약을 중요하게 본 허정무 감독이

그를 대표팀에 다시 호출하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대비하는 원정평가전에 차출된 구자철은

잠비아와의 첫번째 평가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교체출장,호쾌한 중거리슛을상대 골문에 꽂아넣으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2010 동아시아 대회에서도참가하는 등나름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허정무 감독은 경쟁자기성용에비해나은 것이 없다는 판단에 그를 최종 명단에서 제외하였다.

하지만 구자철은자신감이 넘쳤다.

2010시즌 전반기부터 소속팀의 충격적인 반란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속팀에서의 대활약으로 소속팀을 정규리그최종순위 2위까지올린 그는

허정무의 후임으로 온 조광래 감독에의해 당당히 대표팀에 재발탁되었다.

비록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참가로감독의초기평가전에서는참가하지 못했으나

2011 아시안컵 대표팀에 최종 발탁돼 시리아전 평가전에 나섰다.

본래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장하려 했으나 핵심 공격수박주영이 부상을 당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조광래 감독에 의해공격형 미드필더로기용되기 시작하였다.

감독의 판단은 적중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된구자철이

2011 아시안컵 본선 1차전부터 내리 골을 넣기 시작한 것이다.

본선 1,2,3차전 내리 연속골을 넣더니3,4위전 우즈벡에게 또 1골을뽑아냈다.

총 5골을 넣은 그는팀이 3위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2011 아시안컵 최고의 골잡이로 등극하였다

이를 지켜본 해외 스카우터들과 상대팀 코칭 스태프들은 그를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언론은 내내 구자철의 활약상을 보도하였다.

한국하면 박지성을 먼저 떠올린그들이었기에무명의 미드필더 구자철의 대활약에 모두들 바빠졌다.

특히 유럽의 스카우터들이 그를 영입하려 경쟁에 뛰어들었는데

이미 스위스의 영 보이스가 구자철과 협상이 거의 끝난 상태였다.

그러나 유럽 빅리그 구단들이 그와 협상에 나서자

구자철은 오랫동안 협상해왔던영 보이스를 등지고 그들과 협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데스리가의 부유한 클럽 볼프스부르크의 적극적인 구애에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볼프스부르크에 도착한구자철은볼프스부르크 구단관계자들의 긍정적인자세에 마음에들었다.

독일 분데스리가라는배경과 2009시즌 우승팀이라는간판,

재정적으로 풍요로운 구단, 시설 등이 그에게 꽂힌것이다.

볼프스부르크와 협상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에게 공을 들였던 영 보이스가 계약을 어겼다며

FIFA에 제소하려 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돌연 입장을 바꾸며 그의 협상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구자철은볼프스부르크 구단의선수가 될 것을 받아들이며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손흥민에 이은 또 한명의 분데스리가 한국인 선수가 탄생하였다.

향후 전망 : 구자철은 기성용과 달리공격형 미드필더로 보직을바꿔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그동안 소속팀에서는중앙 미드필더로서 공수 연결고리의 핵으로 활약했지만

대표팀에서는 기성용과 플레이스타일이 약간 겹치는 관계로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못했었다.

조광래감독 체제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될 것으로 점쳐졌지만 박주영의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바뀐 것이다. 정말 운이 좋은 선수다.

물론 실력이뛰어난 구자철이기에 가능한 운이었다.운이었지만 덕분에유럽 상위권 리그에도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에게 운이 따라줄까?

일단독일 데뷔전은 무난히 치뤘다. 그러나아직은 선발이 아니다.

구자철이함부르크 전에 투입된 이래 3경기 연속출장중이지만모두 교체투입이다.

디에구, 조수에 등 검증된미드필더들을 이겨내려면교체 투입때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고 팀 자체도성적 부진으로 감독이 짤리는 등 여간 어려운상황이 아니다.

그렇기에 팀에서는 아직 유망주에 불과한 그를선발로 내보내기가 쉽지 안다.

문제는아직 오지도 않은 새 감독의 눈에 들어야 하는 것인데 기회이자 위기일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하면 으레그들을 영입했던 감독이 잘리는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면 후임으로 들어온 새 감독이 맘에 들지 않아 벤치에 썩히는 경우가 많았다.

박주영이나 이청용은 자신의 진가를 꾸준히 발휘해감독이 바뀌어도 팀에서 살아남았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그렇지 못했다. 기성용은요즘 주전으로뛰고 있지만 경쟁자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은 케이스다. 그 전에는 감독이 바뀌어도 여전히 벤치였다. 그만큼 일단 벤치요원이 되면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정작 최고의 활약을 보였던 공격형 미드필드에는

팀의 에이스 디에구가 있고 주 보직인 수비형 미드필더에는 조수에, 하세베 등이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가 그나마 경쟁해 볼 만 하지만 감독은 그를 선발로 기용하지 않고 있다.

본인의 생각엔후반 교체 투입 때 맹활약하지 않는 한 이번시즌은 꾸준히선발로 뛰기 어려워 보인다.

차라리 잘됐다. 아시안컵 7경기 풀출장에 터키 원정까지 뛰었으니 체력이 거의 바닥나 있을 것이다.

푹 쉬면서 체력을 끌어올리며 기회를 엿보면 언젠가 그에게도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5)

이용래(Lee Yong-Rae)

나이 : 26

신장 : 175cm, 71kg

출생 : 대전광역시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왼쪽 풀백(Left Fullback)

클럽 : 수원 삼성블루윙즈(Suwon Samsung Bluewing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6)

클럽 경력 : 봉산중, 유성생명과학고(02~04), FC 메츠(02~03)고려대학교(05~08), 경남FC(09~10), 수원 블루윙즈(2011~)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 A매치 5경기 출장 중

소개 : 최근 아시안컵에서의인상적인활약으로 빛을 본이용래이지만 그 전에는무명 선수에 불과했다.

K리그에는 2009년에 데뷔했고 K리그에서의 활약도동료 윤빛가람의맹활약에 가려 조명 받지 못했다.

자신의 스승인 조광래 감독이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도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2011 아시안컵 최종명단에도정조국의프랑스 진출로 인한제주 전지훈련 불참으로겨우발탁된 멤버였다.

그럼에도 그는 이 기회를 살려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2011 아시안컵전경기 풀타임 출장하며 팀의 3위를 이끌었다.

기성용과더블 볼란테를 이루며월등한 체력으로그라운드 전체를 넘나들었다.

2011 아시안컵 8강전 이란과의 경기에서는 연장까지 소화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모습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리고 팀이 승리하자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

단순히 체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다. 청소년대표팀 시절에도 조명받았던

날카로운 왼발 킥과드리블도빛났다. 매 경기 날카로웠지만

우즈벡과의 3,4위전에서 날카로운 드리블 돌파와 쓰루패스로

구자철의 골을도운 것이 가장 눈에띄었다.

이렇듯 그는 '연습생 신화'라는 수식어로 반짝 뜨기 시작한 무명 선수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사실이용래는청소년 시절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거라는 기대를받았던 될성 부른유망주였다.

기본기와테크닉이뛰어나고과감한 돌파력과 날카로운왼발 킥 능력까지 갖춘 그는

고등학교 시절 축구협회의 지원으로 프랑스의FC 메츠 유소년팀에 입단하였다.

비록 FC 메츠에서는 성인 팀에 올라서지는 못했지만 그곳에서 기량을 갈고 닦아 전술 소화 능력과 경기운영,

그리고측면과 중앙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 능력을 배웠다.

청소년 대표팀에서는중원 사령관으로서청소년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당시그의 성장을 지켜본사람들은 그가장차 국가대표의핵심으로 거듭나리라는 걸

모두 의심치 않았다. 국가대표선수들을 양성한고려대학교에 입학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차 그 기대는 현실이 되가는 듯했다.

하지만이용래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이전에 치른 연습경기에서발목 부상을 당한 것이

불행의씨앗이었다. 그는부상 치료를 위해 6개월을소비했다.

부상 치료를 끝내고 그라운드에 복귀했지만몸상태가 온전치않았다.

경기력 또한예전같지 않았다.그리고 또다시 부상을 당했다.

부상을 치료하면계속 부상이 그를덮쳐왔다. 그렇게 그는 4년간 부상과 싸워야 했다.

자연스럽게 대표팀에서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대학 시절을 암울하게 보낸 이용래였다.

대학을 졸업한 이용래는 이대로 축구를 포기할 수 없어2009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다.

비록 4년간 보여준 것이 없더라도 청소년 시절의 화려했던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다면

분명 자신을 뽑아줄 거라 기대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경남이 그를 번외지명으로 뽑아주었다

(번외지명은 연봉 1,200만원의 최저 연봉을 받는다. 사실상 연습생이나 마찬가지).

17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시절감독이었던 윤덕여 수석코치의 영향이 컸다.

비록 연습생 신분이지만 그 덕분에 부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통증이 있는발목과 골반을치료하는데 힘썼다. 완벽하게몸상태를 갖춰야

정상적으로 경기력을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용래였다.

그는 훈련과 재활에 힘쏟으며 훗날을 기약했다.

그에게 기회가 일찍 찾아왔다.2009시즌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돼 팀의 공수를 책임졌다.

데뷔전에 좋은 모습을 보이자 당시 팀을 지휘했던 조광래 감독은 그에게 계속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데뷔시즌에30경기를 출장할 수 있었다. 득점포인트도6골 6도움으로 무난했다.

이 중 28경기를 풀타임으로 뛰었으니1년 만에 부활한 셈이다.

2010시즌에도 활약이 이어졌다. 특히 조광래감독의 경남이 '조광래의 아이들'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워

전반기1위라는 깜짝 놀랄만한돌풍을 일으키는 데에숨은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다.

그 해에 영입된 윤빛가람과 중원을 책임지며 팀의끈끈한 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는 경남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2010년 말이적료 6억원에 수원으로 영입되었다.

2011 아시안컵에서의 맹활약 이후 터키와의 원정 평가전에도 참가하며 자신의 주가를 계속 높이고 있다.

향후 전망 : 이처럼 이용래는 기성용, 구자철과 함께 대표팀의3대 중앙 미드필더로이름을 날리는 중이다.

앞서 소개한 기성용, 구자철과 달리왼쪽측면도 소화할 수 있어포지션 경쟁력에도 우위를 보인다.

강철같은 체력, 넘치는 활동량, 날카로운 왼발, 기본기 등을 갖춘 이 선수를

능가할비슷한 스타일의중앙 미드필더는현재로선 없다.

조원희, 신형민 등이 있었지만 공교롭게도날카로움에 있어서는이용래에 뒤쳐진다.

컨디션 난조로 대표팀에서 하차한 김정우가 유일한 그의 경쟁자다.

김정우가예전의 기량을 되찾는다면 이용래도자신의 자리를 온전히 보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조광래 감독은 구자철 대신김정우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둘 수도 있어

당분간은 이용래가 기성용의 짝으로 맹활약할 것이다.

수원에서는 시즌초반오장은과 함께 중원을 책임질 것이다.부상과 컨디션 난조라는

암초에 걸리지 않는다면 올시즌 내내 활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득점포인트까지 쌓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유럽무대 진출이 예상보다1~2년 더 앞당겨질 것이다. 이미 아시안컵에서

구단 관계자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몇몇 팀에서는관심 리스트에 올렸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7)

김정우(Kim Jung-Woo)

나이 : 30

신장 : 183cm, 70kg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스트라이커(Striker)

클럽 : 상주 상무(Sangju Sangmu)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8)

클럽 경력 :부평고, 고려대학교, 울산 현대 호랑이(03~05), 나고야 그램퍼스(06~07),

성남 일화 천마(2008),광주 상무(09~10), 상주 상무(상무가 광주에서 상주로 연고를 옮김. 2011~)

우승 경력 : 2005 K리그 우승

개인 경력 : A매치 60경기 출장 4골 기록

소개 : 86년생 미드필더 이용래의 등장으로 국대에서 완전 밀린 모양새이나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다.

잠시 컨디션의 난조로 2011 아시안컵에 합류하지 못했을 뿐 제 동계훈련을 통해 제기량을 되찾는다면

다시 한번 2010 남아공 월드컵 때의 핵심 미드필더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다.

김정우는몸이 깡말라서 약해보이지만

예리한수비 위치선정과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한국의 수비를 책임지며

뛰어난 볼컨트롤과 너른 시야, 경기 조율,날카로운 패싱으로

팀의 공격도 지원하는능력 있는미드필더다.

주 보직은 수비형 미드필더지만한때 일본과 국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한 바 있기에

구자철 대신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될 수 있다.

김정우는2003년 울산에 입단하자마자 주전을 꿰차 팀의 중원을 지켰다.

당시에는 정조국, 최성국,이준영 등 공격자원 출신의 신인들이

활개를 치고 있던 때라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호곤 감독이이끄는 2004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해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였으며

아시아최종예선에서6전 6승을 거두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멕시코 전에서강력한 중거리슛으로

팀의 승리를 확정짓는 골을 넣으며팀의 8강 진출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김정우는 2005시즌울산 최고의 유망주 미드필더였던 이호와 함께 강력한 중원을 구축했다.

당시 울산은 이천수, 최성국, 레안드롱,마차도 등

강력한 공격자원들 뿐만 아니라 현영민, 유경렬, 박병규등

강력한 수비자원들도 포진해 있는최강의스쿼드를 자랑했다.

그 중심에 김정우와 이호가 있었다.

김정우는강력한압박수비로상대의 예봉을꺾었고

날카로운 중거리슛과 패스로전방의 공격을 지원했다.

그렇게 마침내 이루고 싶었던 k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이룰 걸 다 이뤘다 생각한 김정우는

이듬해 울산을 떠나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했고

그곳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활약했다.

2시즌간 54경기 7골을 기록하고 팀을 나온 그는 2008년최종 목표로 삼던 유럽행을 타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프리미어리그열풍이 강하게불던 때라

선수들의EPL진출 시도가 많았던 해였다.

김정우도 이 중 한명으로서 EPL 진출을 타진했다.

위건 애슬리틱과뜻이 맞아 입단 테스트를 보는 데까지성공했다.

그러나 위건 측이 그의 기량을 확신하지 못해 영입은 불발되었다.

할 수 없이한국과 일본 팀을알아봐야했다.

김정우는 J리그타팀 재이적을 노렸으나 실패하자 국내로 선회했다.

그리고 당시 잉글랜드의웨스트 브러미치로 떠난김두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중앙 미드필더를 물색하고 있던 성남과 계약하였다.

그러나 김정우가 일본으로 떠날 때 국내 복귀시 울산으로 돌아온다고계약한 바 있어

이를기억하고 있던 울산이 위약금 6억원을 청구하였다.

이에 김정우 측은나고야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선수본인에게 돌아와야 할 이적료 일부분을 늦게 받았던 점을들어

위약금 6억원을 지급하지 않기로 하였다.

울산은 설득력 없다며 이에 반박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울산은이 일을 없던 걸로하였다.

시즌이 끝난 데다 선수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란다.대승적인 차원에서 이 일을 마무리한 것이다.

결국 이 일은 문제 없이 마무리되었다.

김정우는 평소 하던 대로 성남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일본과 2007 아시안컵에 이어 성남에서도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장한 김정우는

2008시즌 30경기 5골 4도움을 기록하며팀의 핵심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2시즌 연속 리그우승에 실패하자팀을 지휘하던 김학범 감독은

계약 기간을 1년 남겨두고 사퇴하였다.이적 1년 만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김학범 감독의 후임으로 팀의 레전드 출신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신태용 감독은 김학범 감독이 만들어놓은 분위기를 일신시키기위해

주축 선수들을 대거 방출하며 자신의 색깔을 입히려 했다.

다행히 김정우는 그의 살생부에 적히지 않았고

오히려울산 시절 최고의 파트너였던 이호와짝을 이루어 더블 볼란테를 이루었다.

김정우는 탄탄한 허리를 구축하며 2005 울산 시절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렇게2009시즌결승까지진출했다.

팀은결승에서 만난 전북을 홈으로 맞아들여 접전을 펼쳤으나무승부를 거뒀다.

이어진 2차전에서는 김정우도 경기에 나섰으나 에닝요를 막지 못하고완패하고 말았다.

우승 도전에 실패하자 김정우는 머리를 깎고 광주 상무에 입대했다.

그는월드컵대표팀을 오가며 분주히 활약하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는 불안한 수비력으로 욕을 먹었지만

동아시아대회일본전을 계기로그를 바라보는 눈들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어 진행된잉글랜드 원정 코트디부아르평가전에서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자

한때 그를 욕했던 축구팬들이입장을 바꿔 지지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워진 여론을 등에 업은 김정우는 계속되는 평가전에 참가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참가한 김정우는

4경기 연속 출장하며 팀의 16강 진출을 견인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 그의 활약은팀의

수비에 없어서는 안될 만큼 결정적이었다.김정우의 이러한 활약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늘었다.그는 상무로 돌아가성실히 군복무를 하고 있다.

향후 전망 :김정우는허정무 감독 후임으로 들어온 조광래 감독의 대표팀에도 뽑혔으나

기대 이하의 플레이를 펼치는 바람에 2011 아시안컵출장 명단에 제외되었다.

다행히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와일드카드로 출장해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팀의 1차 저지선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2011시즌 상무가 상주로 연고를 옮겨 새롭게 팀을 정비하였다. 선수단도입대한 이병들이

늘었는데 하나 같이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최효진, 김치우, 권순태, 김철호, 김치곤, 장남석,

유창현, 이종민, 이준영 등 k리그에서 한가닥 했던 선수들이 입대한 것이다.

기존의 김동현, 김영삼, 황지윤, 그리고 김정우와 함께라면스쿼드만으로 충분히

상위권팀과도 경쟁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졌다. 이처럼 김정우는훌륭한 동료들과

k리그를 치를 수 있게 됐다. 팀내 최고참 중 하나인 김정우는 올시즌 주장으로서

팀을 이끈다.상무를 이끄는 이수철 감독이 김정우를 스트라이커로 기용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그건 상황에 따라 기용할것으로해석되며주 보직인 중앙 미드필더 역할은 그대로 주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그는 본인의예상을 깨고 스트라이커로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감독의 믿음이 강하고 팀에서도 그를밀어낼 자는 없기에 부상만 없다면2011시즌에도

꾸준히 팀에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팀 또한 전망이 나쁘지 않다.

이용래, 기성용이 활약했다고 하지만 이들도 언제나 컨디션이 좋을 수는 없는 일.

만약 이들 중 한명이라도 부상당한다면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최적의자원은 김정우 뿐이다.

백업 미드필더의 부재로 2011 아시안컵을 끝마칠때까지 기성용, 이용래만 죽도록 뛰지 않았나.

게다가 조광래 감독이 k리거들을 대거 시험해본다고 했으니 분명 정상급 기량을 가진 김정우를

눈여겨 볼 것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던 김정우이니

동계훈련을 착실히 받은모습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다시 대표팀에 복귀할 수 있을것이다.

이용래나 기성용, 아니면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장하는 구자철 같은 선수들과 치열한경쟁이 예상된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9)

김재성(Kim Jae-Sung)

나이 : 29

신장 : 180cm, 70kg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dler), 오른쪽 윙어(Right Winger)

클럽 : 포항 스틸러스(Pohang Steeler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10)

클럽 경력 : 능곡초, 능곡중, 수원공고, 아주대학교(중퇴), 부천 SK(2005), SK(06~07), 포항 스틸러스(2008~)

우승 경력 : 2008 FA컵 우승, 2009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피스컵 코리아 우승

개인 경력 : A매치 7경기 2골 기록

소개 :김재성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한 중앙 미드필더 자원이다.

포항의 핵심 미드필더 중 한명이며 프로6년차다.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운 공로가 있으며 올시즌 팀과 재계약해

다시 한번 포항의 용광로를 뜨겁게 달굴 수 있게 됐다.

김재성은 풍부한 활동량과폭넓은 움직임으로 공간을 창출하는 선수다.

정확한 패스와위력적인 프리킥으로 상대의골문을 노리며허를 찌르는 중거리슈팅이특기다.

돌파력도 뛰어나 주 보직인 중앙 미드필더 외에도 오른쪽 윙어로도 뛸 수 있다.

2005년 부천 SK에 입단하자마자 주전을 꿰찼고 이후 2007시즌까지 친정팀에서 알짜배기로 활약하며

내공을 쌓아나갔다. 2008시즌 오승범과 1:1 트레이드로 지금의 포항 팀으로 이적하였고

황진성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포항을 이끌었다. 12월 제주에서열린 FA컵 결승전에서

경남을 2-0으로 꺾고 우승을 거두는데 공헌한 그는 2009시즌 잠재력이 폭발하기 시작하여

포항의 파리아스 매직을발휘하였다.그를 축으로 한 미드필드진은유려한 패스플레이를 보여주었으며

이를 상대하는 팀들은 그들의 끈끈한 압박과 빠르고 세밀한패스 플레이에번번이 무너졌다.

포항은2009 AFC 챔피언스리그를 치르는 과정에서 더욱 강해졌고

결국 결승전에서K리그 킬러로 악명을 떨쳤던 알 이티하드를 2-1로 꺾고 대망의 우승을 차지하였다.

비록 K리그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후 열린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아프리카와 북중미챔피언을 꺾고 3위를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김재성은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 대표팀에 참가하게 되고

2010년 초에 열린 원정 평가전과 동아시아 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쳐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동아시아 대회 일본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1로 이기고 있던 후반전에쐐기골을 꽂아넣으면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국민들에게알렸다.

이후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기성용과 이청용 등에밀려백업으로 나섰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치르고 나자 김재성은한풀 꺾인 경기력을 포항에서 보여주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활약이었으나 포항에서 보여주었던끈끈하면서도아름다운 플레이를 재연하지 못했다.

파리아스 감독의 후임으로 들어온 라모스 감독이 팀을 망쳐놓고 경질당한 탓이 컸다.

팀을 이끄는 수장이 제대로 못하니 아무리 훌륭한 선수들이라도 제 기량을 보여주기 힘들었을 터였다.

그렇게 김재성은 박창현 감독대행 체제에서 고군분투하며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향후 전망 : 2010시즌이 끝나자 포항은 부산을 지휘했던 황선홍 감독을 라모스 감독의 후임으로 내정하였다.

포항의 레전드 출신을 영입함으로써 팀의 어수선한분위기를 추스르자는 목적도 있지만

지난 3년간 부산을 이끌면서보여준 가능성을 믿고 영입한 것도 있다.

황선홍 감독의 가세로 팀은 서서히 본 궤도에 오르고 있다. 기존의 빈약한 공격진에

외국인 공격수들로 메꿔 공격력을 강화한데다 가장 핵심적인 선수들을 지켜내

지난시즌보다 강한 면모를 보이리라는 예상이다.

전방은 모따를 중심으로 한 외인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겠고

수비진에는 김형일을중심으로한 토종 선수들이 주축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허리진에는 김재성, 신형민국대급 라인이 공수를 조율할 것이다.

김재성은 이슬기, 김태수와 주전 경쟁을 펼치겠지만

충분히 그들을 이겨내고주전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경쟁해 온 황진성이 있지만공존할 가능성이 크다.

대표팀발탁은어떨까? 조광래 감독은 어린 선수를 선호하지만나이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K리거들을 중심으로 뽑는다고 하였다. 이 말에 따른다면

김재성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 하다.수비력과 공격력을 동시에 갖춘 김재성의능력은

그와 함께 거론되는 김근철 등과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하지만 이들 말고도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들이 많아대표팀에 뽑히더라도끝까지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11)

신형민(Shin Hyung-Min)

나이 : 26

신장 : 182cm, 76kg

위치 : 수비형 미드필더

클럽 : 포항 스틸러스(Pohang Steeler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12)

클럽 경력 : 오류초, 수도전기공고, 홍익대학교(중퇴), 포항 스틸러스(2008~)

우승 경력 : 2008 FA컵 우승, 2009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피스컵 코리아 우승

개인 경력 : A매치 5경기 출장

소개 : 포항의 허리를 든든히 지키는 터프한수비형 미드필더.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한 대인마크를 자랑하며

상대의 허를 찌르는 중거리슈팅이 일품이다. 2008년 포항에 입단하자마자 주전을 꿰찼으며

신인왕 후보에 오를 정도로 알짜배기 활약을 펼쳤다.

12월 말FA컵 우승에 기여한 그는 이듬해2009시즌에도

변함없는 활약을 펼치며 팀의파리아스 매직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2009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김재성과 함께 허정무감독이 이끄는 월드컵대표팀에 합류하였다.

신형민은 프로 2년만에찾아온 대표팀 활약에 매우흥분했지만

이를제어치 못하고 포항에서 보여준 제 기량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원정 평가전까지 따라가 기회를 잡았지만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명단에 뽑히지못하고 친정팀으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온 친정팀은 예전의끈끈하고 아름다운 팀이 아니었다.

수장을잃어 분위기가 어수선했으며 성적도 나빴다.

이후조광래 감독이이끄는 대표팀에새롭게합류한 신형민은 한일전을 통해

지난 날의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여 2011 아시안컵 최종명단에 들지 못했다.

향후 전망 : 비록 대표팀에서 번번이 실패를 거듭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한때'조투소'라 불리던

조원희를완전히 밀어내는저력을 보여줬으니 더욱 아쉽다.그래도 포항에서는 신형민만큼

수비력이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어 부상 당하지않는 한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팀에는기성용, 이용래 뿐만 아니라 김정우, 김재성, 김근철, 하대성 등

잠재적인경쟁자가 워낙 많아대표팀에 합류하기 어려워보인다.

이미 한번조광래 감독의 눈에 들었다고는 하지만

한일전에서 실망스런 경기력을 보여줘 다시 뽑히려면 리그에서더욱 뛰어난 활약을 펼쳐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13)

김두현(Kim Do-Heon)

나이 : 30

신장 : 175cm, 66kg

출생 :경기도 동두천시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오른쪽윙어(Right Winger)

클럽 : 경찰청 축구단(Korea Police FC) - 대한민국R리그(2군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14)

클럽 경력 : 동두천초, 통진중, 통진종고, 수원 블루윙즈(01~05), 성남 일화 천마(05~07),

웨스트 브러미치(08~09), 수원 블루윙즈(09~10), 경찰청(2010~)

우승 경력:아디다스 컵 우승(2001),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 우승(2001,2002), 아시아 슈퍼컵 우승(2001,2002)

K리그 우승(2004, 2006), FA컵 우승(2002,2009,2010), 컵대회 우승(2005),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2005),

A3 챔피언스컵 우승(2005), 잉글리쉬풋볼 리그 챔피언쉽 우승(07/08)

개인 경력 :A매치 53경기 출장 11골 기록

1997 추계중고축구대회 MVP

2004 제18회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프로스펙스 특별상 수상

2004, 2005, 2006, 200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2005 푸마-스투 프로축구 베스트 일레븐

2005 스포츠 토토 한국축구대상 베스트 일레븐

2006 제20회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MVP

2006 K리그MVP

소개 : 한때자타가 공인한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였으며

k리그에서유럽 잉글랜드 리그로 진출, EPL 무대까지 밟은 국내 정상급 중앙 미드필더.

적재적소에 찔러주는 날카로운 패스와위협적인 중거리슈팅 능력을 겸비했고

경기흐름을 파악하는똑똑한 두뇌와너른 시야를 바탕으로 공수를 조율한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볼 컨트롤과 기술을 갖고 있어

중원에서 공을 쉽게 뺏기지 않는다.폭넓고 부지런히뛰어다니며 공간을 창출하는 스타일.

주 보직은 중앙 미드필더이며 상황에 따라 오른쪽 윙어로 기용되는 등 위치전술에서도 장점을 갖고 있다.

2001년 통진종고를 졸업하고 프로팀 수원에 입단한 김두현은 입단 첫해에 조커로 나오며 k리그 무대에 적응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선배들의 쟁쟁한 경기력에 힘입어 국내외에서 열린 대회우승을 경험했다.

선배들의경기를 몸소 체험하며 기량을 갈고 닦은 그는

2003시즌 주전으로 도약하며 팀의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당시 수원은김호 감독에 의해김두현 같은잠재력 있는 유망주들을 중심으로 팀을 개편되고 있었다.

비록 예전 아시아를 호령했던 시절에 비해다소 약해지긴 했으나

김두현 같은 유망주들이 펼치는 경기력은중,하위권 팀들에게 다소 껄끄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부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김호 감독이 사퇴를 선언,

창단 이래 처음으로 감독이 교체되었다.김두현은 김호 감독의고별 경기였던 대구와의 홈경기에서

멋진 프리킥을 꽂아넣으며떠나는 스승의유종의 미를 안겨주었다.

2004시즌 김호 감독의 후임으로 차범근 감독이들어왔다.

김두현은전임 감독과 정반대의스타일을 가진 차범근식 축구에 다소애를 먹었다.

그러나 영리한 선수답게감독의 전술에 적응해팀의 중심과 측면을 휘저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참가로 경기수가 줄었지만

이후 프로축구 경기에서는 늘 선발 출장하며 팀의 공수를 조율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수원은2004 k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2004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장해 팀의 공수를 조율했다.

크게 눈에 띄는 플레이는 보여주지 못했으나

있는 듯 없는 듯적절히 동료에게 볼배급하였다.

그렇게올림픽 첫8강 진출에 견인한 그는 2004 k리그 우승을 이끌고

이듬해 전반기까지 수원에서 활약하다 성남으로 이적하였다.

수원에서는 김남일, 김도근 등 파이터형 미드필더들에 밀려 오른쪽 측면에 기용되었는데

이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그의 불만을 아는지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성남에서는

4-3-3 포메이션의공격형 미드필더자리를 주었다.

드디어 맞춤복을 입은 김두현은 제 기량을 뽐내기 시작했다.

쟁쟁한 선수도 후보로 밀릴만큼 더블 스쿼드를 갖춘 성남에서 중심 역할을 맡자

자신의 색깔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그는 2005시즌 21경기에 출장해2골 3도움을 기록하였고

이듬해에는 33경기에출장해 8골 4도움을 기록하였다.

특히 2006시즌에는 김학범 감독의 전술이물이제대로 오른 시기라 어떤 팀도 성남을 대적하지 못했다.

성남의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팀 플레이는지금도 회자되고 있을만큼 매우 강력하였다.

그 중심에 김두현이 있었다.

김두현은결승전에서친정팀을 상대로뛰어난 플레이를 펼치며 승리를쟁취,2006시즌 k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2006시즌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후 j리그팀을 알아보았으나 불발되자성남에 남아 팀을 이끌었다.

2007시즌에도 여전히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리그에 나섰으나

여름에 열린2007 아시안컵 참가로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김학범 감독 특유의 베스트 일레븐 고집으로

리그와 아챔을 베스트 스쿼드로만 돌리니아무리용가리 통뼈라도

후반기까지 꾸준히 경기력을 보여주기 힘들었다.

성남은몸상태가 안 좋은 김두현을 잠시 쉬게 해줬지만

아챔 4강전상대인 우라와를 꺾기 위해 그를교체 투입하였다.

김두현은핵심 선수답게 1,2차전 맹활약하였으나 끝내 팀은 승부차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설상가상, 성남은 k리그챔피언결정전에서

파리아스 감독이이끄는 강철군단 포항에게골문을 내주며정규리그 우승하고도

5위팀 포항에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2008시즌 꾸준히 해외 진출을타진한김두현은과감히 유럽 리그의 문을 두드렸다.

행선지는 잉글랜드.

당시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의활약으로 잉글랜드 리그에 대한 도전 의식이 선수들에게 퍼져있었던 시기였다.

김두현은 에이전트와 함께 각 팀을 알아보며 자신의 맞는 팀을 점검했다.

알아본 결과 그에게 맞는 팀은 웨스트 브러미치였다.

팀은 비록 2부리그에 있지만 그 당시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할가장 확률이 높았고

김두현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는 패스플레이 축구를 구사하고 있었다.

김두현은 구단을 찾아가 입단테스트를 보았다.

그를 지켜보던 토니 모브레이 감독은뛰어난 선수라고 극찬했고 즉시 팀에 합류시켰다.

1월에 임대로 합류한 그는 남은 경기에 투입되어 좋은 활약을 펼쳤다.

팀이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자 2008년 5월 완전이적 계약에 성공했다.

이로써 김두현은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동국에이어 5번째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는 한국 선수가 되었다. 그는 대표팀과 클럽을 오가며 분주히 활약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서는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중앙 미드필더로 출장해공수를 조율했고

클럽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돼 주로 수비에 치중했다.

김두현은 아스날과의 데뷔전을 시작으로 시즌 초반 매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9월 27일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서무릎 부상을 당해

3분 만에 교체 아웃되면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부상에서 회복했지만 이미 그의 자리는 다른 선수가 차지하고 있었고

교체 투입되어도 시즌 초반의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몸상태가 안 좋았는지 대표팀에서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클럽에서는 방출을, 대표팀에서는 북한전을 끝으로 다시는소집되지 못했다.

김두현은 2009년 7월 친정팀 수원으로 돌아와 2년 만의 유럽생활을 끝마쳤다.

원점으로 돌아온 김두현은 위기에 빠진 수원에서 재기를 노렸다.

중앙 미드필더로 출장한 김두현은언제 그랬냐는 듯 그라운드에서 펄펄 날았다.

경기감각이 많이 무뎌졌음에도 여전히 센스만은 살아있었다.

그는 팀에 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경기 출장수는 적었지만

투입된 경기마다 제 기량을 발휘하며 팀의 승리를 도왔다.

그리고 성남과의FA컵 결승전에 출장해 팀에 FA컵 우승을 안겼다.

김두현은 팀의 아시아 챔피언과 국내 리그 우승을 위해 상무 입대를 포기하고 1년 더 잔류하였다.

그는 돌아온 조원희와 함께 팀의 중원에 포진되어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웨스트 브러미치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김두현이 빠진 수원은 공격에 힘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골가뭄에 시달렸고 대량 실점을 내주었다.김두현이 복귀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수원은 전반기 꼴찌를 기록하는 치욕을 맛봤다.

이 때문에 차범근 감독은 계약 기간을 1년 6개월을남겨두고 사퇴하였다.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수원의 레전드 출신윤성효 감독이 들어왔다.

김호 감독의 축구를 지향하는패스플레이 신봉자인 그는

부상에서 복귀한 김두현을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다.

김두현은 이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려 하였다.

그러나 부상 후유증 때문인지 예전의 날카로운 패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똥볼만 날리며 팀의 공격 흐름을 끊어먹었다.

김두현은 어느새 벤치에머물렀고 간간이 선발과교체를왔다갔다했다.

그렇게 흐지부지 시즌을 마쳤다.

향후전망 : 김두현은 군복무를 위해 올해경찰청에 입대했다.조동현 감독이 이끄는 경찰청은

K리그의 2군리그라 할 수 있는R리그에 참가하는 팀이다.홈구장이 있지만

주로 상대팀 원정 보조 경기장을 떠돈다.상무보다는 인프라나 언론 노출에서여건이 열악하다.

사실상 대표팀에서 부름 받을 가능성이 없다.

경찰청에서는(당연하게도)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할 것이다. 조동현 감독은

허리를 거치는 아기자기한 패스플레이를지향한다. 2007 FIFA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서도

한국팀을 이끌며 이러한 플레이를 펼친 바 있다. 김두현의 재능을 살릴 수 있다.

감독 또한 내셔널리그와 청소년 대표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바 있기에

R리그 내에서 기대를 해도 좋을 팀이다. 그의 조련을 거쳐 과연 K리그에 복귀해도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지 기대된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15)

백지훈(Baek Ji-Hoon)

나이 : 27

신장 : 175cm, 65kg

출생 : 경상남도 사천시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클럽 : 수원 삼성블루윙즈(Suwon Samsung Bluewing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16)

클럽 경력 : 봉래초, 풍기중, 안동고, 전남 드래곤즈(03~04),gs(05~06), 수원 블루윙즈(2006~)

우승 경력 : 2006 컵대회 우승, 2008 K리그 우승, 2009 FA컵 우승, 팬퍼시픽 챔피언쉽 우승

개인 경력 : A매치 15경기 출장

2001 백록기 고교축구대회 어시스트상 수상

2002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MVP

200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소개 : 수준급의 볼 컨트롤과 날카로운패스,스피드를 살린탁월한 공간 침투를 바탕으로

영리한플레이를 펼치는 창의적인 중앙 미드필더.

탁월한 중거리슈팅도 겸비해 득점에 기여하지만 위에 소개한 선수들과 다르게

기복이 심하고 잔부상도 많다는 점이단점이다.

그러나 한번 물이 오르면누구도 주체할 수 없는 타입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백지훈은 2003년 안동고를 졸업해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하였다.

그 당시에는 아직 즉시 전력감이 아니어서 주로 2군에 머물렀다.

그러다 2004시즌 기회를 잡아 18경기에 출장해 1골을 기록하였다.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평가를받은 백지훈은 2005시즌gs로 이적하여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이장수 감독이 이끄는 gs에서나름출장기회를 잡으며 활약한 그는

박주영과 함께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네덜란드에서 여린 2005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백지훈은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팀의 역전 결승골을 넣으며 일약 스타덤에올랐지만

팀은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해 빛이 바랬다.

하지만 청소년 월드컵 및 k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자

국가대표팀은 그를 호출, 2006FIFA 월드컵에 참가시킨다.

비록 벤치였지만 어린 유망주에 불과했던 그에게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월드컵에서 돌아온 그는 2006년더 큰 무대에 뛰기 위해 해외 진출을 타진하였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gs는 그를 수원으로 트레이드 시켰다.

이에 백지훈은 크게 반발했는데 그의 계약 기간이 6개월 남는다면

이적료 없이 자유롭게 팀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이적료를챙기고 싶었던 gs는 백지훈의 뜻과 관계 없이수원에 비싼 값에 팔아넘긴 것이다.

이에 gs측은백지훈 측의 주장과 달리선수의 동의를 구했고

먼저백지훈 측이 이미수원과협상을 벌였다고반박했다.

이렇게 한바탕 진흙탕 싸움이 번지려 하고 있었다.

다행히 백지훈은 수원 이적을 결심했고 이 일은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

백지훈이 붉은 유니폼에서푸른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잘생긴 외모로많은여성팬들을 끌어들였다.

gs팬이었다던 여성팬들이 수원으로 갈아탔다는소식도 전해졌다.

백지훈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팀의 승리를 위해 뛰었다.

그는이관우와 함께 중원에 배치돼 강력한 허리라인을 구축했다.

그리고 기회를 살려 마수걸이 골을 넣었다.

전반기에 부진했던 팀은 승리를 챙기기 시작했다.

특히백지훈이 골을 넣으면 그 경기는 반드시 승리했다.

이로 인해 수원팬들은 그를 매우 좋아했고'승리의 파랑새'라며 칭송했다.

백지훈은 gs보다 수원이 더 잘 맞는다며만족감을 표시했고 이에 차범근 감독도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우승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수원이 성남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후기리그 우승으로 불이 붙었다지만팀 완성도가 최고조에 오른 성남의 벽을넘지 못한 것이다.

리그 우승에 실패하자 허탈감에 빠져FA컵 우승도 놓치고 말았다.백지훈은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었다.2007시즌을 맞이한 그는여전히 뛰어난 기량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이관우, 에두, 마토, 안정환, 김남일,이운재 등 스타 플레이어들로 무장한 수원에서도 그는 빛났다.

특히 그는 안정환,김남일, 이관우와 함께 잘생긴 외모로 대표되는 스타 플레이어로서

수많은 여성팬들을끌어들였다.

하지만 2007시즌 이후 조금씩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여전히 변함없는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크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고

오히려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며 25경기 이상 출장하는 일이 없어졌다.

2008시즌더블을 이루는 데에 적잖게기여했지만역시 22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9시즌 또한 23경기 출장에 그치며 기복을 드러냈다.

국가대표팀도 그를 부르는 횟수가 눈에 띄게줄어들었다.

허정무 감독은 아예 그를 배제하고 다른 선수들을 불렀다. 백지훈은대표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수원에 집중했지만 예전의기량을 보여주는 시간이 갈수록 짧아졌다.

2010시즌 긴 재활 끝에 모습을 드러낸 백지훈은

전반기를 마친차범근 감독이 사퇴한 이후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패스 플레이를 지향하는 윤성효 감독의 눈에 든 것이다.

그는 새 감독의 지지에 힘입어 중앙 미드필더로서 뛰어난 플레이를 펼쳤다.

김두현이 제기량을 못 내는 사이에그가나서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잠시 동안 백지훈의 부활에 수원팬들은 매우 흥분했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백지훈의 환상적인 플레이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넘쳤다.

그러나 백지훈은어느새 감쪽같이 그라운드에 사라지고 없었다.

그라운드는커녕 벤치에도 없었다.

윤성효 감독은 그가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6강 플레이오프가 걸려 있는중요한 시기에 경기에 나서지 않겠다는 건

수원팬들로선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재충전하고 돌아오겠다는 백지훈의 말에 수원팬들은 믿고기다렸다.

그리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성남과의 2차전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경기를 끝으로 그의 모습을볼 수 없었다.

경기 도중 성남의 수비수 사샤의 거친태클에부상을 입고 만 것이다.

이 때문에 백지훈은2010시즌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2011시즌 기약없는 재활에 몰두하고 있다.

향후 전망 : 백지훈은 분명 재능있는 미드필더다.2006 K리그MVP 출신김두현도 그의 뛰어난두뇌 플레이를 극찬했다.

윤성효 감독 또한 그의 재능을 칭찬하며한때 팀의 중심으로 만들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워낙 부상이 잦고기복이 심해기세가바닥을 치고 있다.

그래서인지시즌이 끝나면 늘 백지훈의 이적설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성남, 포항 쪽이 대세고 울산,인천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재활 중인 고액연봉자 백지훈을 선뜻 영입할 구단은 없는 듯하다.

수원이타팀과 협상할 때트레이드 카드로 내놓는 것이 백지훈이라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결과적으로 백지훈은 팀에 남아 재활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늘 불안하다. 특히 올시즌에는

일찌감치 다른 팀으로 마음을 두었겠다 싶을 정도로 수원의 스쿼드가 매우 강력해졌다.

오장은, 이용래, 이상호 등의중원 라인 뿐만 아니라 최성국, 염기훈 측면까지 빈틈이 없다.

잘못하면 벤치워머로 한시즌을 보낼 수 있다.

게다가 그는 고액연봉자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지출을 막기 위해

구단이 그를 팔아버릴 가능성이 크다.

정말이지 이번시즌이야말로 백지훈은 2006년 이래가장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그는 수원에서올시즌 끝날 때까지버틸 수 있을까? 솔직히회의적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17)

오장은(Oh, Jang-Eun)

나이 : 27

신장 : 175cm, 73kg

출생 : 제주도 제주시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클럽 : 수원 삼성 블루윙즈(Suwon Samsung Bluewing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18)

클럽 경력 : 조천중, FC 도쿄(02~04), 대구 FC(05~06), 울산 현대 호랑이(07~10), 수원 블루윙즈(2011~)

우승 경력 : 2004 J리그 우승, 2007 K리그 컵대회 우승

개인 경력 : A매치9경기 출장

2002 J리그 최연소 출장 기록 달성(16세 8개월)

소개 : J리그에 먼저 진출해 한국으로 돌아와K리그 정상급 중원 사령관으로 성장한몇 안되는미드필더.

만 16세에 프로생활을 시작해아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프로 9년차에 들어섰다.

그래서 웬만한 베테랑 못지 않은 침착함과 노련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장은은 그라운드를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폭넓게 공간을 창출하는 타입으로,

너른 시야와 날카로운 패스는 기본이고 공격진과의 공격 전개능력이뛰어나

직간접적으로 득점포인트를 얻어낸다.
특히 자신에게 기회가 오면 과감하게 반박자 빠른 슈팅을 시도하는 모습은 그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
수비 위치선정도 좋아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된다. 개인기술도 뛰어난 편.

오장은은 조천중학교 시절 잠시 수원 2군 연습생으로 참가해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윤성효코치로부터 축구를 배웠다.

그 당시 수원과 안양이중학생 또래의 유망주들을 영입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때라

유망했던 중학생축구선수 오장은은 수원 연습생 신분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원에는 입단하지 않았고2002년FC 도쿄에 전격 스카웃된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도쿄는 영입하자마자 그를 1군으로 올리며 일찍 J리그 무대를 경험시켰다.

4월 13일 감바오사카와의 경기에 교체투입돼 36분 뛰었는데

그 당시 오장은의 나이가만 16세 8개월로 J리그 역대 최연소데뷔 신기록으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된 선발출장은주어지지 않았고

2004년계약이 마무리될 때까지 거의2군 선수에머무르게 하였다.

게다가 고질적인오른쪽 어깨 습관성 탈구를 앓던 오장은이2004년 11월 9일

또다시오른쪽 어깨 관절이 빠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도쿄는 그를 방출하고 말았다.

그렇게 오장은은 아쉬움을 남긴 채일본을 떠났다.

2005년한국으로 돌아온오장은은 빅리그를 타진했다.

당시 청소년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그이기에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

유럽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다.

그러나 유럽 구단스카우터들의 눈도장을 찍는 데 실패하게 되면서 빅리그의 꿈도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그는 할 수 없이k리그 팀을 알아보았지만k리그 팀들도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해명성에 비해몸값이 비싼 그를선뜻 영입할 구단은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곳은 시민구단 대구fc.

박종환 감독이이끄는 대구는 끈끈한 조직력을 앞세운 팀으로 알려져 있지만

선수들의 전체적인수준이 높지 않고 선수층도 얇아유망주인 오장은이 뛰기에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오장은은대구의 손에 든 푸른 유니폼을 입고 k리그 데뷔시즌을맞았다.

2005시즌을 맞이한 오장은은 첫해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사람들의눈과 귀를사로잡았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수비력 뿐만 아니라

공격력까지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득점에도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숨에 대구의 에이스로 부상했다.

2006시즌에도변함없는 활약을 보여주었는데팀 동료 홍순학의 부재에 힘입어 더욱 돋보였다.

특히 2006년 9월 23일 전북과의 원정경기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한 장면은 백미 중의 백미였다.

때마침 대표팀 코칭 스태프들이경기를 관전하고 있어서 더욱가치있는 활약이었다.

이에 힘입어 오장은은 꿈에 그리던태극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2006년 10월 8일 가나와의 친선경기에 데뷔한 그는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대표팀에서 탈락하였으나 부동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남일이심각한 부상을당하는 바람에

대표팀에 재발탁, 2007 아시안컵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김상식, 손대호 등 성남파 투 볼란테들의 틈을 비집고들어가는 데에는

경험과 기량,호흡에서 역부족,벤치를 지켜야 했다.

이후 대표팀과의 인연이 멀어진 오장은은 2007시즌 울산 현대로 이적하며

k리그에 집중했다. 김정남 감독이이끄는 울산의중앙 허리에 배치된 그는

자신의 기량을 과시하며 상대팀의 허리를 흔들었다.

2009시즌 김정남 감독의 후임으로 들어온 김호곤 감독 체제에서도

그는 허리의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울산에서의 활약이 좋아 2010 동아시아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과의경기에서 뜻밖으로 측면에 배치돼 본의 아니게제 보직에서 뛰지 못했다.

난데없이 낯선 포지션에서 뛰었으니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같은 포지션이었던 김재성도 오른쪽 측면으로 배치되었지만

오장은은 그처럼 돌파력이 뛰어나지는 않다. 결국 이 경기를 끝으로

더 이상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울산으로 돌아간 오장은은 2010시즌 팀의 주장에임명되어솔선수범 팀을 이끌었다.

팀이전반기 1위를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허술해진 수비력으로 인해 비기거나 지는 경기가 많아졌고

결국 간신히 플레이오프 진출권에 드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성남과의 6강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어이없게 무너지고 말았다.

오장은은시즌이 끝나자마자 다른 팀을 알아보았다.

특히예전에시도했던 해외진출을 이 참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추진해왔다.

그러나 국가대표 경력이 없던 오장은에 관심을 갖는 구단은거의 없었다.

결국 다시 k리그 팀을 알아보았는데 마침 수원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윤성효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수원 연습생 시절의 인연이 있으니 함께 뛰자고.

이에 오장은은 고민 끝에 그를 받아들이고 수원이 훈련하는 괌으로 갔다.

그곳에서 한달간 훈련하며 계약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오장은은

이미 수원과 함께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뜻밖의 소식으로 인해 그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다.

애초에 조원희와 맞 트레이드 될 거라는 소식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는데

조원희가 중국광저우 헝다로 이적하게 되면서 맞 트레이드는취소되었다.

이 때문에오장은의 영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수원은 오장은의 거취를 놓고 고민하였다.

이에 윤성효 감독은 이미 영입하기로 합의하였으니 돈을 줘서라도 영입하자고 주장했다.

원래대로라면 계약은 취소될 가능성이 컸으나

다행히 구단으로부터 선수 영입의 권한을 감독에게 일임받았기에 허락받게 되었다.

덕분에 오장은은 정식으로 수원 유니폼을 입고 2011시즌을 치를 수있게 되었다.

향후 전망 :오장은은분명 k리그 정상급 선수이나 불행히도 경쟁 포지션에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해야 했다.

김남일, 김상식, 김정우, 이호에서부터기성용, 신형민, 조원희, 이용래까지 국가대표에 들 때마다

그들과 맞서야했다. 그래서 오장은의 실제A매치 경기 수는 고작 9경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에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흐름이 오장은에게 유리하다.

일단 그는수원 입단을 계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2011 아시안컵에서 대활약을 펼친 이용래와 중원을 지키게된 것이 가장큰데 이용래의 활약상을 지켜볼

축구팬들과 언론, 그리고 국가대표 관계자들이 자연스럽게 오장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광래 감독이 중원에서 수비력 있고 공격전개가 뛰어난 선수를 물색한다고 하였기에

특징이 일치하는 오장은으로서는굉장히 좋은 기회다.만약 오장은이 이용래와의 호흡이 환상적으로

맞는다면 조광래 감독은해외파 기성용을 배제한 오장은-이용래 투 볼란테 시스템을 실험할 수 있다.

축구의 생명은 조직력에 있기에 클럽에서부터 발을 맞추는 두 선수의 동시 기용은 분명 매력적이다.

오장은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면 이번이 적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때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19)

김남일(Kim Nam-Il)

나이 : 35

신장 : 181cm, 75kg

출생 : 인천광역시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클럽 : 톰 톰스크(FC Tom' Tomsk) -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0)

클럽 경력 : 인천 송월초, 부평동중, 부평고, 한양대학교(96~99), 전남 드래곤즈(00~04), 엑셀시오르(02~03 임대),

수원 블루윙즈(05~07), 빗셀 고베(08~09), 톰 톰스크(2010~)

우승 경력 : 2005K리그 컵대회우승,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A3 챔피언스컵 우승

개인 경력 : A매치 96경기 출장 2골 기록

2002 CONCACAF 골드컵 베스트 일레븐

2002 체육훈장 맹호장

2002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200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2004 K리그 올스타

2004 제18회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프로스펙스 특별상

소개 :한때 1차 저지에 있어 국내에 따를 자가 없었던 국내 정상급수비형 미드필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주역 중 한명이며 월드컵 3회 연속 출장한 베테랑 선수다.

2002 한일 월드컵 시절상대의 볼을싹쓸이하다시피 빼앗는다는 의미에서 '진공청소기'라 불리기 시작했다.

강력한 몸싸움을 바탕으로 상대의 공격을 미리 차단하고,

볼을 빼앗으면 전방과 측면의 동료에게 정확히 볼을 배급해준다.

중원,측면 할 거 없이 상대가 공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나 그 앞에 나타났기에

같이 뛰는 동료에게는 매우 든든한 존재였다.

수원에 있던 시절본인도 그가 있으면 중원이 든든해보였다.존재감이 굉장히 컸던 인물이었다.

어느덧 나이가 3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여전히적응하기 힘들다는

러시아 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기에 아직까지는 기량이 건재한 듯싶다.

김남일은 2002년부터 크게 흥했지만프로에 입단하기 전에

일찌기98년 아시안게임에국가대표로 참가한바 있는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주눅들지 않는 허슬 플레이로 축구인들의 이목을사로잡았다.

2000년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한그는 데뷔하자마자중원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팀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김남일의 존재감은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그는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멤버로 참가했고

2001년본격적으로 팀을 지휘하기 시작한히딩크에게 간택되어국가대표팀 멤버로 활약했다.

그러나 대표팀이강팀과의 연이은 평가전에서 대패를 거듭하자

축구팬들은 1차 저지를 제대로 못하는 김남일을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거칠기만 할 뿐 실속은 전혀 없다며그를빼라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김남일은 주눅들지 않았다. 자신을믿고 기용해주는 히딩크 감독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기에자신감을 가지고 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이어진 스코틀랜드,잉글랜드,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냄으로써 자신을 비난하는 축구팬들을 침묵시켰다.

특히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박지성에게 찔러준 환상적인쓰루패스는

그가 거칠기만 한 선수가 아님을 입증했다.

덕분에 더욱 더 자신감을 얻은 김남일은 모두들 아시다시피

대표팀을2002 한일 월드컵 4강으로 이끌었다. 모두들 한명한명 귀중한 선수였지만

김남일의 존재는 대표팀에서 더 없이 귀중한 존재였다는 것을 월드컵에서 입증되었다.

한일 월드컵 이후 김남일은단번에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가 되었다.

더군다나 신세대 다운 솔직한 입담과 나쁜 남자 이미지로 수많은여성팬들을 사로잡았다.

그가 그라운드에 뜨면경기장은 온통여학생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찼다.

그가 얻은 것은돈, 명예와여성팬들의 마음뿐만이 아니었다.

더욱안정된경기운영능력과 카리스마를 얻었다.

그는 전남을 지난시즌 8위에서 5위로 끌어올리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2003년 김남일은 월드컵 후광에 힘입어 네덜란드 리그에 진출했다.

그가 뛸 팀은명문 페예노르트.

비록 임대였지만 유럽진출이 드물었던 시기였기에

축구팬들의 김남일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하지만김남일은 테스트에서당시 감독이었던 반 마르바이크의 눈도장을 찍지 못한 탓인지

며칠 만에 엑셀시오르로 임대되었다.

당초페예노르트와 계약하면서 임대 후 이적이라는 좋은 조건을 제시받았던 점을 상기한다면 아쉬운 결과였다.

김남일은아쉬움을 뒤로 한 채 엑셀시오르에서 네덜란드 리그 무대에 적응했다.

차가워보이는 성격은 유럽에서도 여전했다.

하지만팀은 대패에 익숙한 팀이었다. 선수단의 수준 자체도 낮았지만지독한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자신도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엑셀시오르에서1시즌을 보냈다.

결국 페예노르트에서 인정받지 못한 그는 완전이적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하였다.

다시 국내로 돌아온 김남일은 더욱 농익은 플레이로 전남의 중원을이끌었다.

김남일 본인도 유럽 경험이 실력 향상을 불러왔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경기운영면에서 한층 향상되었다.

이장수 감독의 지휘력과김영광, 김태영, 네아가 등 수준 높은 동료들이

있었던 것도 그에게이익이 되었다.

덕분에 1997년 이후 가장 좋은 성적 3위를 거두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2005시즌 김남일은 수원 블루윙즈로1:2 트레이드 되었다.

수원의 트레이드 대상은 고종수, 조병국이었다.

수원의 상징 두명과 맞바꿨다는 점에서 김남일의높은 가치를 알 수 있다.

김남일의 이적으로 수원은 한층 두터운 중원을 형성했다.

김남일도국내 최고 명문구단 중 하나에 입단하게되어더 크게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시작하기도 전에 돌부리에 제대로 걸려넘어졌다.

오른발 중족골 골절을 당해 시즌 2/3 가량을가량을 날려버린 것이다.

중원에 큰 힘이 되어줄 김남일이 빠지자 수원은 나락에 빠지고 말았다.

감독의 전술 부재라는 비난이 컸지만 김남일의 부재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후기리그 gs와의 홈경기에 교체 투입되었지만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2005시즌을 흐지부지보내고 말았다.

2006시즌 김남일은 수원을 이끌 주장을 맡았다.

애초에 그의 존재감은팀을 이끌 리더가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김남일 본인은 본래 팀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는 성격이지만

지난시즌에 활약하지 못한 점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주장 완장을 순순히 어깨에 찼다.

그러나지난시즌부터 가라앉은 성적은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수비력은 나름 괜찮았지만 공격력 빈곤에 허덕이는 바람에무승부 경기가많았다.

컵대회는 더욱 충격적이다. 수원은 제 기량을 내지 못하고 꼴찌를 기록하고 말았다.

주장 김남일의 시름은 깊어져갔다.그러나 이내시름은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수원이 이관우, 백지훈, 올리베라등을 영입하면서분위기를 일거에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공격력빈곤 문제를 단숨에 해소시킨 수원은 달라진 경기력으로 후기리그 1위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포항을 꺾고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 우승을 목전에 두었다.

그러나 팀 완성도가 높은 성남에 1,2차전 모두 패배,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전남과의 fa컵 결승전에서도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주장 김남일은 무관에 그친 이번시즌에 아쉬움을 곱씹어야했다.

2007시즌수원은 에두, 나드손, 안정환, 배기종, 박성배, 안효연 등즉시전력감들을 영입하였다.

더욱 화려해진 스쿼드로무장한 수원은 흥행과 성적을 모두 잡으며 승승장구하였다.

그 중심에 김남일도 있었다. 그는 비록 이관우에게 주장을 내주었지만

여전한 카리스마로 중원을 든든히 지켰다.

그의 존재 유무에 따라 경기력도달라졌다.

화려한 스쿼드였지만 이 중 가장 빛나는 선수는 김남일이었다.

시즌 도중 부상만 아니었다면 2007 아시안컵에도 참가했을 것이다.

김남일은수원팬들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007시즌이 끝나자 그는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으로 간 것 자체는 문제가아니었지만 이적 과정 자체에 말이 많았다.

그는부상 치료차일본으로 갔는데구단 몰래 일본 프로축구빗셀 고베와 계약협상을 벌였다.

이를 발각당한 김남일은무슨 소리냐며 자신은 여전한 수원맨이라고

외쳤으나 이윽고 그 말이 무색하게 빗셀고베 팀에 입단하였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수원과 수원팬들이 노발대발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수원팬들은이 일로 인해 김남일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다.

수많은 비난을 뒤로 하고2008시즌 j리그 무대를 밟은 김남일.

그는 그곳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였다.

2008년 허정무 감독이이끄는 대표팀에서는 주장을 맡았고

중국에서 열린동아시아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자신은 mvp가 되었다. 하지만이때부터 기량이 조금씩 퇴화되기 시작했다.

한 템포 패스가 느렸고 움직임도 조금 무거웠다.

이에 기성용과 김정우, 조원희등이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김남일은 후배들의 거센 저항에 힘을 쓰지 못했고 결국대표팀에서도 물러나고 말았다.

j리그 진출 후 한순간에 훅 가버린 것이다.축구팬들은 김남일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반전을 이루어냈다. 계약기간이 끝나자 유럽 진출로 활로를 모색했다.

그는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 이끄는톰 톰스크와 만나 계약 협상을 벌였다.

한국축구 현장에 있었던 니폼니시 감독은 한국 출신 김남일의 영입을 환영했다.

그 뿐만 아니라 신영록 등한국 선수들에 대한협상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냈다.

덕분에 김남일은 톰 톰스크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러시아 리그에 진출함과 동시에 그는 다시 한번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유럽 원정에 기용된 그는안정적으로중원을 이끌었다.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김남일이었다.

계속된 평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자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명단에도 발탁되었다.

그는 3차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 후반 20분 염기훈과 교체투입되었다.

2-1로 앞서던 시기였기에 중원을 한층 두텁게 만들라는 허정무 감독의 지시였다.

그러나 김남일은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투입된 지 4분만에야쿠부에게 페널티킥을 내준 것이다.

결국 팀은페널티 킥 골을 허용하게 되고이후 경기흐름을 완전히 상대에게 내주고 말았다.

다행히 필사적으로 상대를 막아내며 무승부를 이끌며 16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다 이겼던 경기흐름을 일거에 내준 김남일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김남일 뿐만 아니라 아내 김보민도100살까지 살만큼 쌍욕을 먹었다.

이 일로 김남일은 더 이상대표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김남일은 국내로귀국하지 않고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연봉 3개월이나밀려 있었던 것이다.

그는 톰 톰스크 사장을만나 연봉 3개월치를 빠른 시일 내에받을 것을 요구했다.

거기에 FA 신분으로 돌릴 것을 추가적으로 요구했다.

사장은 이를 받아들이고 그를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주었다.

이로써 김남일은 이적료 없이 자유롭게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는 사우디 명문 알 샤밥과 계약을 맺기로 하였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계약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계약이 무산되었다.

다른 팀을 알아보았지만시간이 없었다.

결국 톰 톰스크로 복귀, 지금까지 뛰고 있다.

향후 전망 :2011시즌 K리그에 루머가 떠돌았다.러시아에서 활약하는 김남일이

인천과 계약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함께 한 허정무 감독과 고향 인천 출신인 김남일의 인연이 이어져

루머는 꽤 믿음직해 보였다.

그러나 끝내 인천행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루머로 끝난 것이다.

대표팀에서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완전히 퇴물 취급을 받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러시아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만큼 여전히 기량은 건재하다.

K리그상위팀은 다소무리더라도 인천 같은 중위권 이하의 팀이라면 충분히 그의 기량이 통할 것이다.

해외 클럽 소속이라면 3월 21일까지는 추가 등록이 가능하다. 아직까지는 K리그 행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혹 이번시즌은 안되더라도 다음시즌에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이미 나이는 36세. 철저히 몸관리를 한다 해도

1년 지나면 연봉이 더욱 깎이기 마련이다. 과연 그가 고액 연봉을 마다하고 국내로 돌아올까?

솔직히 회의적이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만약 고액 연봉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중국 리그로 이적할것 같다. 박성화감독이이끄는다롄에 갈 것 같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1)

이호(Lee-Ho)

나이 : 28

신장 : 182cm, 75kg

출생 : 서울특별시

위치 : 수비형 미드필더(Defensive Midfielder)

클럽 : 울산 현대 호랑이(Ulsan Hyundai Horang-i)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2)

클럽 경력 : 성내초, 중동중, 중동고(중퇴), 울산 현대 호랑이(03~06), 제니트(06~08), 성남 일화 천마(2009),

알 아인(2010), 오미야 아르디자(2010), 울산 현대 호랑이(2011~)

우승 경력 : 2005 K리그 우승, 2006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2007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우승,

러시아 슈퍼컵 우승, 2007/08 UEFA컵 우승, 2008/09 UEFA 슈퍼컵 우승

개인 경력 :A매치 24경기 출장

200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소개 :한때 '신형 진공청소기'로 불리며 제2의 김남일이 될 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은최고의 기대주였으나

러시아에서 실패를 맛본 이후정체되어있는 수비형 미드필더.

하지만 그가 가진 능력만큼은 여전히 k리그에서정상급이다.

스피드를 살린 폭넓은 움직임으로 상대의 예봉을 꺾고

수준급의 볼배급으로 공수조율을 하는 능력이 탁월한데다 승부근성이 강해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높다.

위에 소개한 선수들처럼 이호도 어릴 때부터 매우 유망한 선수였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2000년 브라질 명문크루제이루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

그는 그곳에서 기량을 갈고 닦았으며실전 경기에서 잠재력을보여주었다.

2002년크루제이루 유소년감독의 추천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AC 키에보에서 입단테스트를보았고 합격하여 2군에 입단하였다.

그곳에서도 좋은 기량을 보여줘 잠재력 있는 유망주로 평가받았으나

불행히도 팀에비유럽권 선수 보유제한 수를초과해 국내로 돌아가야 했다.

2003년 20살의 나이에 K리그 명문 울산 현대에 입단한 이호는 9경기에 출장하며 k리그 무대를 밟았고

2004년에는 19경기에 출장하며 점차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리고 이듬해 2005년에는주전 미드필더로 성장해

김정우와 함께k리그 최고의 투 볼란테를 형성했다.

덕분에 울산은 두번째 리그 우승을거둘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이호는 2005년 10월에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꾸준히 뛸 수 있었고

2006 독일 월드컵 무대도 밟았다.

이후 대표팀을 지휘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러시아 제니트로 떠나면서

김동진과 이호를데려가게 되는데여론은 히딩크가 박지성, 이영표를데려갔듯이

이들도 그렇게 유럽에 진출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출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대에 불과했다.데뷔시즌은18경기에 출장하며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듯보였다.

2007시즌이 되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버렸다.

그 해에 영입된 경쟁자티모슈크에 밀려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한 것이다.

동료 김동진은 왼쪽 풀백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러시아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드는 감격을 맛본 것과 비교된다.

2007/08시즌 제니트가UEFA 컵 우승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벤치에 있었다.시즌 3년차 때도 마찬가지.

그는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벤치에 허덕였다.

결국 그는회한을 품고팀을 떠나야 했다.

2009년 이호는 K리그 명문 성남 일화로 이적했다.

김정우와 재회한 그는 2005시즌의 기억을 되살려강력한 투 볼란테를 형성하였다.

3년간 벤치에 있었지만 기량은 여전했기에 금방 기량을 회복해 팀의 리그와 FA컵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들과의 호흡은 1시즌 만에 멈추고 말았다.

고액 연봉을 제시한 아랍 에미리트 명문 알 아인의 제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호는 최고급 대우를 받으며 UAE 무대를누볐다.

그러나 2010년 8월 1년도채 안돼서장외룡 감독이 지휘하는 일본 J리그의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주전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크게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재계약에 실패하며 팀에서 방출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현재 친정팀 울산의 유니폼을 입고 2011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 전망 : 울산의 중원 허리진에는 에스티벤 외에는 그와 경쟁할 만한 선수가 없다.

오히려 에스티벤과중원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에서 별 소득없이돌아와서 그렇지K리그에서 보여준 실적은보통 이상이다.

그렇기에 이번시즌을좋은 활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팀 재발탁 가능성은 어떨까? 물론이번시즌을 잘 치르면조광래 감독이 부를 가능성은있다.

파이터형 미들이라는 거친 이미지가 남아있어서 그렇지볼 컨트롤과패싱도 수준급이다.

하지만 영리하지 못한 볼처리와 판단력으로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흠이다.

조광래 감독은 영리한 플레이를 펼치는 중앙 미드필더를 선호한다. 중원에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선수여야한다. 그러나이호는 그렇지 못하다.영리한 두뇌플레이가 약점으로 지적되는 그가

대표팀에 재발탁되더라도2014 월드컵까지 참가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솔직희 회의적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3)

김상식(Kim Sang-Sik)

나이 : 36

신장 : 184cm, 72kg

출생 :전라남도 해남군

위치 :수비형 미드필더(Defensive Midfielder),센터백(Center Back)

클럽 : 전북 현대 모터스(Jeonbuk Hyundai Motor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4)

클럽 경력 : 구포초, 덕천중, 경남공고, 대구대학교(95~98), 성남 일화 천마(99~02),광주 상무(03~04군복무),

성남 일화 천마(05~08),전북 현대 모터스(2009~)

우승 경력 : K리그 우승(2001, 2002, 2006, 2009), FA컵 우승(1999), 아디다스컵 우승(2002),K리그 컵대회(2006),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2002)

개인 경력 : A매치 58경기 2골 기록

1999 대통령배 최우수 수비상 수상

소개 : 다른 선수들과는 차별되는 멀티 플레이 능력을 보여주는 베테랑 미드필더.

본래 대학시절까지 윙백을 보아왔으나 프로팀 성남에 입단하면서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바꾸며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상대에게 공을 빼앗을때까지 철거머리처럼 달라붙는 독한 기질을발휘한다하여

'독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뛰어난체력과 폭넓은 활동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붙을 수 없는 별명이다.

대인마크 뿐만 아니라 수비 위치선정에도 일가견이 있고 상대의 패스를 차단하면

예의그 날카로운 공격 전개 패스로상대의 허를 찌른다.

한마디로 중앙 미드필더로서 갖출 건 다 갖춘 k리그 최고의허리자원이었다.

2001,2002,2006시즌성남의 리그 우승을 안겨준 원동력이 되었다.

허리 자원 뿐만 아니라 중앙 수비수로서도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레알 성남이라 불리고 있었던2005시즌에는 동료김영철과 함께센터백으로 활약하였고

신태용 감독의 성남에서 방출돼 전북으로 이적한 2009시즌에도단 한경기를 제외하고 센터백으로 활약해

전북 역사상 최초의 k리그 우승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김상식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36살이 된 지금도 소속팀전북의 핵심멤버로 뛰고 있으며

1999년 성남에 입단한 이래무려 4차례나 K리그 우승을 팀에게 선사하는 등

우승 청부사로서의 기질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K리그를 보지 않는 대다수의축구팬들은 김상식을 곱지 않은눈으로 바라본다.

국가대표에서의 불안한 플레이 때문인데안타까운 것이 김상식은 국가대표에 많이 발탁되었지만

자신의 주 보직이 아닌중앙 수비수로출장하였다.

감독들은수비력 뿐만 아니라 공격력까지 뛰어난 이 선수를

중앙 수비수로 기용해후방에서부터 깔끔한 패스 전개를 기대한 것인데

페널티 지역 내에서의 위험한플레이 및 불필요한 반칙 등으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자안타까운 한숨을 토해내야 했다.

이로 인해 축구팬들에게 '카드 캡터김상식'이라는 별명과 함께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다.

2007 아시안컵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장, 안정된 플레이를 펼쳤으나

음주파동으로 인해 묻히고 말았고이후 열린이란과의 친선 경기에

다시한번 중앙 수비수로 출장했지만 1:0으로 앞서가던 후반 인저리 타임에볼처리 실수로

상대 공격수에게 골을 허용당하자 축구팬들로부터 집중적인 맹비난을 받았다.

이후 그는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이처럼 김상식은 주 보직이 아닌 곳에서 기용되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비운의 선수다.

국대와 K리그에서 상반된 활약을 보여준 김상식의 두가지 면모는

그의 진가를 잘 알고 있는 축구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향후 전망 : 이미 그는 30대후반을 향해 치닫고 있는 지는 해다.

1년마다 은퇴와 현역의 기로에 서서 고민해야 할 시기다.

아직까지는여전히 전북에 없어서는 안될핵심멤버로 활약하고 있지만

자칫 부상을 당하기라도한다면

그의 완만한 곡선이 아래로 급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부상은 언제나 잘 나가는 선수들의 발목을 잡아왔다.

김상식도 예외가아니다.

하지만 그가 축구를 계속 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강하다면현역 생활은 오래 갈 것이다.

그러나2~3년 더 전북에서 핵심 멤버로 활약할 것 같지는 않다.

올시즌은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중앙 미드필더 자원이 나온다면

언제든지 물갈이 대상이 될 수 있을것이라 생각된다.

1년마다 떨어지는 체력과 성적이 안 좋을시 나올 법한한물 간 선수 뒷담화 등

여러 불안요소가 숨어있는 것도 본인이 그가 오랫동안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할 거라는 의견을 뒷받침한다.

만약 이를 이겨내고 2~3년 후에도 팀의 핵심멤버로 활약한다면

김상식은 단지 훌륭한 선수가 아니라(지금도 훌륭하지만)

위대한 선수라고 칭송받아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의 행보가 궁금하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5)

조원희(Cho, Won-Hee)

나이 : 29

신장 : 177cm, 73kg

출생 : 서울특별시

위치 : 수비형 미드필더(Defensive Midfielder), 풀백(Fullback)

클럽 : 광저우 헝다(Guangzhou evergrande)- 중국 슈퍼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6)

클럽 경력 : 배재중, 배재고, 울산현대 호랑이(2002), 광주 상무 불사조(03~04), 수원 블루윙즈(05~08),

위건 애슬래틱(2009), 수원 블루윙즈(2010 임대), 광저우 헝다(2011~)

우승 경력 :K리그 우승(2008), K리그 컵대회 우승(2005, 2008),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2005),A3 챔피언스컵 우승(2005)

개인 경력 : A매치 36경기 1골 기록

2005 제19회 올해의 프로축구대상 수비상

2005 프로축구 골든볼 골든슈 수비상

2005,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소개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활동량으로중원을 종횡무진 누비며 팀의 살림꾼으로 활약하는

투쟁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이러한 점에착안하여'조투소'로 불리고 있다. 또한 스피드도 갖춰

측면에서도100% 기량을 발휘한다.조원희는 2002년 울산 현대에입단해

광주 상무를 거쳐 수원의 초창기에 이르기까지 주로오른쪽 풀백(왼쪽에서도 뛰었다)으로 뛰었으나

2007년후반기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바꾸며 제2의 전성기를이루었다.

지난시즌 수원에 있을 때오른쪽 풀백으로 복귀하기도 했으나

오른쪽 풀백보다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더 좋은 활약을 펼쳤다.

조원희는 2002년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데뷔시즌을맞이했다.

그러나쟁쟁한 선수들과의 경쟁에 이기지 못하고 1경기 출장에 그쳤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는지그는 이듬해 머리를빡빡 밀고 광주 상무에 입대하였다.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옳았다. 선수층이 얇았던 상무에서는그에게 많은 기회를주었다.

그는 2년간 매시즌20경기 이상을 출장하며 팀의측면을 도맡았다.

군복무를 마친 조원희는 친정팀 울산으로 돌아가지 않고경쟁팀 수원으로 이적하였다.

상무에서 보여준성실한 플레이를 목격한 차범근 감독이 그를 원했던 것이다.

조원희는 이에 부응하고자적극적인 팀플레이로 팀의 측면을 이끌었다.

특유의 투쟁심으로상대에게 볼을 빼앗기면 바로 달려들어악착같이 뺏어냈다.

덕분에쟁쟁한 선수들이 많은 수원에서 주전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당시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던 본프레레 뿐만 아니라 아드보카트 감독으로부터

눈도장을 받아 2005년부터 쭈욱 대표팀에서 활약하였다.

2006 독일 월드컵까지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조원희는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며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활발한 오버래핑은 좋았지만 공격에 나가면 수비할 때 돌아오지 않아 뒷공간을 자주 내주는

문제점을노출했다. 이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축구팬들은 그에게 '돌아오지 않는 윙백'이라며

비아냥대기 시작했다.이 문제로 조원희는 골머리를 앓았다.

2007시즌은 그의축구인생에 새로운 전환기가 되었다. 2007시즌여름 휴식기에 열린

첼시와의 친선경기에서오른쪽 풀백으로 출장한 조원희가뒷공간을 계속 털리자

차범근 감독은 그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할 것을 주문했다.

조원희의 성실함과 투쟁심을 활용하면중원에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판단이었다.

조원희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8월에 열린 서산과의FA컵 16강전에 처음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모습을 드러냈다. 가능성을 확인한 차범근 감독은 이후 쭈욱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데, 그의 판단은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조원희는 예의 특유의 투쟁심으로

1차 저지선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2007시즌은가능성만 보여줬다면 2008시즌은

가능성이성공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었다.김남일이 없는 수원에서는 그가 진공청소기였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수원은 전반기 무패행진을 이어나갔다. 이 즈음대표팀에서도 그를 불러

기용하였다. 그는수원에 2008 K리그 우승을 안겼고대표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확고히 하였다.

이에 힘입어 그는 2009년 2월꿈에 그리던 위건 애슬래틱으로 이적하였다.

데뷔시즌2군 멤버에 불과한 그가누구나 열망하는 프리미어리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여기서 멈추었다. 그는 3월 28일 이라크와의 친선경기에서

종아리 부상을입어 시즌 아웃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시즌 중 회복하여 5월 16일

프리미어리그 37라운드 스토크 시티 FC 전에 데뷔전을 치뤘지만 이듬해감독이 바뀐

팀에서주전경쟁에 완전히 밀리고 말았다. 수비력은 좋았지만 공격전개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이치명적인 단점이었던 그는 자신의 한계를 딛지 못하고 꺾이고 말았다.

게다가현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향수병을 앓았던 그는결국 수원으로 임대 복귀하게 되었다.

당시 조원희의 부재로 허약했던 허리진에 전전긍긍하던 차범근 감독은 그의 복귀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가 돌아왔으니이제 중원 문제는 걱정 없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다.

조원희가 돌아와도 총체적인 수비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수원은 상대하는 팀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팀은 전반기 꼴찌라는 치욕을 맛봐야 했다. 이 때문에6년 6개월간 팀을 이끌었던

차범근 감독은 자신 사임하였다.조원희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성공시대를 열어준 이가 바로차범근 감독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고 기용해줬는데 이에 보답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아쉬웠을 것이다.

반면 그의 후임으로 온 윤성효 감독은 조원희 대신 강민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실험을 하였다.

조원희는 키도 작고 공중제공권 장악에도능하지 않아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기용하기 꺼려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를오른쪽 풀백으로 복귀시켰으나여의치않았다.

대신 리웨이펑이 그의 자리를 차지해 좋은 활약을 펼쳤다.

조원희는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시즌이 끝나자조원희는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을 알아보았다.

일단 수원으로 완전이적하려고 했으나고액 연봉 때문에 무산되었다.

K리그 뿐만 아니라 J리그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의 높은 연봉을

감당할 팀은 나오지 않았다.위건으로 돌아가서재도전해보라는축구팬들의 의견도 있었지만

조원희는 돌아가고싶어하지않았다.이대로 무적 선수로 전락하는 듯했다.

하지만그에게 손을 내민 이가 나타났다. 중국 리그의 광저우 헝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별 볼일 없는 하부리그 팀에 불과했으나중국인 재벌에 인수되면서부터

급성장하기 시작한 신흥 강호팀이다.광저우는 중국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을대거 영입함은물론이고

전직 국가대표 출신의외국인 선수들도 수급해 탈 중국리그팀으로 변모하였다.

게다가 감독은 중국리그 최고의 명장 중 한명인이장수 감독이니어느 곳 하나무시할만한 부분은 없다.

이런 팀이 조원희에게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손을 내민 것이다.

조원희로서는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그는자신에게 기회를준 광저우의 손을 잡았다.

다시 한번재도약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향후 전망 :조원희의 재도약은가능할까? 국가대표팀 발탁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리그에서의 도약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그는 전성기 시절특유의투쟁심과성실함으로 중원의 진공청소기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뿐만 아니라매끄럽지 못한 공격 전개도 수원에서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비록공중제공권이 약하다는 윤성효 감독의 판단에 주전에서 제외되었지만

이는 감독의 성향에 따른 것이고 전술적으로 충분히 무마시킬 수있다.

공격 전개의 매끄러움도 충분히 전술로 무마할 수 있으니

진공청소기의 부활을 기대해본다.

주목할만한 선수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7)

하대성(Ha, Dae-Sung)

나이 : 27

신장 : 182cm, 73kg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클럽 : g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8)

클럽 경력 : 울산 현대 호랑이(04~05), 대구 FC(06~08), 전북 현대 모터스(2009), gs(2010~)

우승 경력 : 2009, 2010 K리그 우승, 2010 컵대회 우승

개인 경력 : A매치 1경기 출장

2008 윈저 어워즈 한국축구대상 윈저골 수상

소개 : 최근 국가대표팀에는 기성용, 이용래, 구자철 등패스플레이에 능한 선수들이 대부분 포진하고 있지만

정작 수비력이 뛰어난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1차 저지에 능했던 김정우가 가장 강력한 후보였지만컨디션 난조로 대표팀에서 제외되었고

대신 이용래와 기성용이 투 볼란테를 형성하며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이용래는1경기당 12km 이상을 뛰며 중원을 누볐고 기성용도그에 못지 않게 뛰어다님으로써

아시안컵 대회 초반안정적인 허리 운용을 보였지만경기를 거듭할수록 체력에 문제점을 노출하며

상대 패스를 잘 못 막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까지는 체력 안배에서 미숙한 모습을 드러낸 두 선수다.

게다가 이 선수들만으로2014 브라질 월드컵에 나갈 수는 없다.

그에 못지않은 기량을 가진경쟁력 있는 미드필더들이 뒷받침되어야하는데

아직까지는기성용, 이용래의 아성을 넘을 선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우리나라에는 충분히 이러한 선수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선수들이있다.

위에 소개한 김정우가 있고오장은,김재성도 있다.

신형민도 주목할만한 선수다.그리고지금 소개할하대성이 있다.

하대성을 아는 축구팬은 많지않을 것이다.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만 실제로 이 선수가 어떤 유형의 선수인지

잘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이렇다 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04년 울산에 입단했지만 2006년 대구로방출되다시피 이적하기까지 2경기 출장에 그쳤고

대구에서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해냈지만 팀의 위상이 낮아 제대로 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그래도 대구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2008년 대표팀에 잠깐 발탁되었지만 1경기 출장에 그쳤다.

그가 축구팬들로부터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때는 전북으로 이적한2009년부터.

그는 김상식을 수비수로 밀어내고 자신의 진가를 톡톡히 발휘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gs로 이적한 이듬해에도 중원 사령관으로서 팀의 공수를 탁월하게 이끌며 자신의 리그 2연패를 달성하였다.

그가 2010시즌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gs팬들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gs 팬들이 뽑은 k리그mvp'로 선정할 정도였다.

그럼에도k리그 중계가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 언론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점이

그를여전히 무명 선수로 전락시키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그의 이름이대부분의 축구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질 기회가 주어질 것 같다.

급진적인 세대교체를 준비 중인 조광래 감독이k리그의 유망한 선수들을 눈여겨 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2010년 말 제주도 전지훈련에 하대성을부른 적이 있는 그는최대한 가능성을 보이는 선수들을대거 발탁하며

앞으로 있을 평가전에 시험하고 있다.비록 하대성은 부상 때문에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가회복해 k리그에 복귀한다면조광래감독은중원장악력이 뛰어난그를발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발탁된다면 조광래 감독이 시험하는

포어 리베로(수비형 미드필더지만 공격할 때는 과감하게 가담하는 역할)로 기용될 것이다.

엄청난 활동량과뛰어난 체력,높이와 힘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공격 가담에도 능해 충분히 포어 리베로로 활약할 수 있다.

향후 전망 : 위에서 언급했듯 그는 부상 때문에대표팀은커녕 k리그에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현재 gs는 그의 공백으로 k리그에서 최하위에 처져 있다.

새롭게 팀의 감독으로 부임한 황보관 감독은고요한, 최현태 라인을 내세웠지만

지난시즌 빙가다 감독의허리 라인의 위력에전혀 견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그는 지난시즌 우승의 주역하대성의 공백을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이는 곧 기회일 수 있다. 하대성이 없는 gs는 현재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

만약 그가 복귀해 무너진 허리를 안정시키고 팀의 성적 또한 반전시킬 수 있다면

그는 지난시즌보다 더욱 크게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대표팀관계자는

그의 발탁을 심각하게 고려할 것이고활약을 펼치는 젊은선수라면실험해보고 마는 조광래 감독의

특성상 그를한번 쯤은 뽑아볼 것으로 예상된다.그처럼 중원장악력이 뛰어난 선수는

우리나라에흔치 않기에충분히 대표팀에 뽑힐 만한 매력이 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9)

박희도(Park, Hee-Do)

나이 : 26

신장 : 183cm, 71kg

위치 : 윙어(Winger),윙 포워드(WingForward),공격형 미드필더(Attacking Midfielder),

섀도우 스트라이커(Shadow Striker)

클럽 : 부산 아이파크(Busan IPark)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30)

클럽 경력 : 문일중, 문일고, 동국대학교, 부산 아이파크(2008~)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 2009 헬로! 풋볼 팬즈 어워즈 베스트 팬즈 플레이어

소개 : 예전부터 축구팬들에게각광받고 있는 부산의 에이스.그의 활약상이뛰어난 외국인선수급이라

'바키도'라는기분좋은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그는 다양한 재능을 두루 갖춘 전천후 플레이어다.

수준급의 개인기와볼 컨트롤로 상대수비진을 뒤흔들 수 있고

스피드를살린드리블 돌파 능력으로 자신이 직접골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슈팅의 힘과 세기도 뛰어나다. 오른발, 왼발 가리지 않으며 정확성 모두 뛰어나

세트피스시 날카로운 프리킥과 코너킥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공격센스가 있어 경기운영의 큰 주축이 된다.

미드필드 어디서든 뛸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예전에 부산에서 활약했던 이정효 선수처럼 그도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비록 팀의 위상이 낮고 아직대표팀에발탁되지 못하고 있어

축구팬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충분히 대표팀에 들 수 있는 저력이 있고 신데렐라가 될 가능성도있는 선수다.

박희도는 2008년 부산에 입단해 프로데뷔하였다.

당시 안정환이 부산의 에이스로 활약했고 팀의 성적이 안 좋아

다소 묻힌 감이 있지만 데뷔시즌26경기에 출장해 4골 4도움을 올리는 좋은 활약을 펼쳐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었다.

이후 안정환이 중국 다롄스더로 떠나자 그는명실상부 부산의 뉴 에이스로 떠오르며 대활약을 펼쳤다.

2009시즌 35경기에 출장해 8골 7도움을 올리며황선홍 감독의 부산을 다크호스로변모시켰고

2010시즌 시즌중 부상을 당해 22경기 출장에 그쳤음에도 7골 6도움을 기록하는맹활약을펼쳤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2009시즌 컵대회, 2010시즌 FA컵 준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자신을적극 기용해 준황선홍 감독이포항으로 이적하자 포항 이적설이 흘렀으나 그는 부산에남아

올시즌안익수 감독의 부산을 이끌고 있다.

향후전망 : 2011시즌 SK와의K리그 개막전원정경기에서홍정호를 따돌리고 선제골을 기록한 박희도.

여전히 자신의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대표팀에는아직까지 부름받지 못하고 있는데

축구팬 입장에서는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스텟이 전부가 아닐 뿐더러

대표팀에 워낙쟁쟁한 선수들이 많기에 뽑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그보다 활약이 적은 선수들도 당당히 뽑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물론 본인은 그가대표팀에 뽑힐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문제는 그가주전급으로 도약하느냐다.

주전급으로 도약하지 못하면 다시 대표팀에서 탈락할 것이다. 왜냐하면조광래 감독은 박희도를

지금까지 한번도 실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리그에서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이면쉽게 뽑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리 활약해도제대로 기회를 주지 않는경우가 있는데 유병수가 그런 선수다.

유병수는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정작 아시안컵에서는1경기 교체 출장을 제외하고

한번도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 않은가.

유병수가 리그에서 워낙 뛰어난 활약을 펼쳐 국대에 발탁되었지만

실상 조광래 감독은 유병수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듯하다.

아무리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쳐도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는다면 제대로 기회를 주지 않는스타일인 듯하다.

박희도도 이런 경우에 속하지 않을까?본인에겐 미안하지만

대표팀에 뽑히더라도 주전급으로 도약하지 못하고탈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선발이 아니고 후보 명단에 오른다면 더더욱.본인의 예상이 빗나나길 바란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31)

박현범(Park Hyun-Bum/Park Hyun-Bem)

나이 : 26

신장 : 194cm, 86kg

출생 : 광주광역시

위치 : 수비형 미드필더(Defensive Midfielder)

클럽 :수원삼성 블루윙즈(Suwon Samsung Bluewings)-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32)

클럽 경력 : 월곡초, 북성중, 금호고, 연세대학교,

수원 블루윙즈(08~09), sk(10~11), 수원 블루윙즈(2011~)

우승 경력 : 2008 K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

개인 경력 : A매치 1경기 출장

소개 :배구선수급의 신장을자랑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이상적인 신체조건이프랑스 미드필더패트릭 비에이라를

닮았다고 하여 '박에이라'라고 불린다.

키값을 하는 우월한 공중제공장악력으로 중원을 지배하는 그는

공격의시발점으로서도 그 역할을 해낸다.

이는 안정적인 볼배급과 수준급의 패싱력을 갖췄음을 의미한다.

2007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에서도 활약한 바 있는 박현범은

2008시즌 드래프트 2순위로 수원에 입단하였다.

당시 핵심 미드필더김남일이 J리그 빗셀 고베로이적하는 바람에

허리가 매우 부실해진 수원은기대주 박현범을 '김남일의 후계자'로 점찍고 영입하였다.

그리고 시즌 초반부터 그를 선발로 내보냈는데 그 활약이기대 이상이라

그의 공백을메웠다는만족감을느낄 수 있었다.

그 만족감은경기를 거듭할수록진해졌고 최후에는 리그 우승까지 일궈내면서 절정에 올랐다.

스타급 선수들의 이적과 부상으로전력이 다소 약화되었다는 일부 여론들이

있었지만이를 완벽히 무마시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수원의 모든선수들을 비롯해 박현범의 활약이 있었기에가능했다.

박현범은수원의 차세대 미드필더로 부각되며 그 기대감을 한몸에 받았다.

더욱이 2009년 3월 28일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그 기대감은 절정에 올랐다.

하지만2009시즌이 시작되자상황은 반전되었다.

조원희, 마토, 이정수 등 핵심 수비자원들이 빠져나가자탄탄했던 수비가 급격히 무너지고 만 것이다.

박현범은 선발로 나서며 고군분투했지만지난시즌보다 못한 플레이로 수비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경기를 거듭할수록경기력이 떨어졌다. 결국 벤치를 넘어 2군으로강등되고 말았다.

2년차 징크스에 제대로 걸린 박현범은 다음시즌 절치부심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차범근 감독은

더 이상 그의 부활을 기다리지 않았다.sk의 핵심 수비수 강민수를 영입하고자

배기종과 함께2:1 트레이드시켜버린 것이다.

비록지난시즌을 죽썼다고 하지만차세대 미드필더로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수원팬들로서는

아쉽기 그지없는 결정이었다. 이에 일부 수원팬들은 그의 결정을 비난하였다.

하지만 이미 트레이드 시켜버렸으니 다시 내놓으라고 할 수 없는 법.

누구보다 박현범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영입한 박경훈 감독을 믿고 절치부심하였다.

2010시즌이 개막하자마자 그는 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2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하려는 찰나 발가락 골절상을 당했지만

부상에서 복귀한 후 다시 제 기량을 되찾으며 활약을 이어나갔다.

구자철, 박현범 조합으로 강력한 허리진을 구축한 sk는

지난시즌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경기를 지배,

2010시즌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국가대표 미드필더 구자철의 맹활약이 스포트라이트 받았지만

박현범도 이에 못지 않은 화제를 낳았다.

덕분에조광래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의 제주전지훈련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향후 전망 :하지만 2011 아시안컵 명단에 오르는 데 실패하면서 가파른 상승세는 다소 주춤한 상태다.

이후 열린 평가전에서도 그의 이름을 호명하지 않으니 그에대한 기대감은 다소 줄어든 듯하다.

그렇다고 희망의 끈을 놓을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2014 브라질 월드컵은 3년 후에나 열리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지금의 대표팀스쿼드가 유지될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몇몇 언터처블은있겠지만 그건

best 11이야기고주전 로테이션감으로서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때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1년이란 기간도 매우 긴 시간이다. 하물며 3년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아직 20대 중반에 불과한박현범이라면

충분히조광래 감독이 요구하는 수준의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경기가 안 풀릴 때 슬럼프에 쉽게 빠지는 것이 변수이지만

이를 이미 한번극복해냈기에 다시 한번 이겨내리라 믿는다.

(2011시즌 후반기 이적시장을 통해 수원으로 이적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33)

황진성(Hwang, Jin-Sung)

나이 : 28

신장 : 177cm, 70kg

위치 : 공격형 미드필더(Attacking Midfielder), 윙 포워드(Wing Forward)

클럽 : 포항 스틸러스(Pohang Steeler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34)

클럽 경력 : 갈현초, 목동중, 포철공고, 포항 스틸러스(2003~)

우승 경력 : 2007 K리그 우승, 2008 FA컵 우승, 2009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

개인 경력 : 없음

소개 : 황진성은신화용과 더불어두명 밖에 없는포항맨이다.

2003시즌 포항에서 데뷔해 지금까지 한번도 포항을 떠나본 적 없는

원클럽맨인 것이다. 특히그에대한 포항팬들의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

황진성이 축구 선수의 꽃이라 할 수있는 '테크니션'으로 활약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테크니션이 아니다.창조적인 패스와유려하고 빠른드리블,

날카로운 슈팅은 물론이고번뜩이는 재치와 재간으로 경기의 흐름을 자신에게

가져갈 수 있는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당당하게해낸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

경기를 지배하는 테크니션. 한번 물이 오르면모두가 그의 움직임에

따라야 하는 '판타지스타' 스타일을 갖춘 선수다. 9년간 포항을 오고 간브라질 선수들도

다른 선수도 아닌 그를한국 최고의 선수라며 그의장점을 인정했을정도니

그의 테크닉이k리그에서도 얼마나수준높은지알 수 있다.

하지만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는 법.기실 장점의위력보다 단점이 더 컸기에

국가대표 승선은 물론 팀에서도 입지가 좁았던 어두운 과거가 있다.

흔히 피지컬 능력에 포함되는 체력과 몸싸움은 현대축구에 필수적인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템포 빠른 축구를 구사하려면전술의 다양한 변화를 위해

많이 뛰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강한 체력이 필수다. 게다가 요즘은

허리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압박 플레이가 빈번히 펼쳐지는데이에 대한

대비로 효율적인 움직임을 90분 내내 해낼 수 있는 체력과압박을 견뎌내는

몸싸움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황진성은 이를 갖추지 못했다.

가끔 번뜩이는 재치로팀 승리에 기여하지만상대에 묶이게 되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경우를 많이경험했다. 이 때문에 황진성은K리그 최고의 테크닉을

보유하고도 국가대표팀은 물론 팀 내에서조차 완벽한 주전멤버로 인정받지 못했다.

게다가 체력이 안되니적극적인 수비가담도 어려워 전술상 '반쪽짜리 선수'라는

치욕적인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한국테크니션들의 비애를

맛봐야만 했던 황진성.

하지만 황진성의 축구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그와 궁합이 맞을 것 같았던

파리아스감독 시절에도 벤치신세를 져야 했던 황진성이지만 그는 서서히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그 시작은 2010시즌 후반기부터.

황진성은 박창현 감독대행의믿음 아래선발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반기 레모스 감독의삽질로포항은 예전의 기운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

경기에 투입되었지만 성적을 반등시킬 위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2011시즌 황선홍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힘차게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황선홍 감독은 황진성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왼쪽 윙포워드에 기용하였다.

기술력과 슈팅력을 동시에 갖췄지만 수비가담능력이 떨어지는 그에게

공격진 투입이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그에 단점은 신형민과

김재성, 김정겸 등이 그의 뒤를보좌해메워주게 했다.

황진성 본인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단점을메우기 위해

체력 운동에 한창이다. '반쪽짜리 선수'라는꼬리표를 떼고 진정한

포항의테크니션으로 발돋움하고 싶어한다.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그는 최근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팀의선두를 이끌고 있다.

아사모아, 모따와 함께 삼각편대를 형성한 그는굳게입을 다물고

활발하게 공격한다. 7라운드 울산과의빅매치에서는 윙 포워드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장하며 팀의 3-0 완승을 이끌었다. 조금씩

자신의 전성기를 보여주고 있는 황진성은 그렇게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향후 전망 : 황진성의 부활이 반갑다. 정상급 테크니션이 드물었던 K리그에

아름다운 플레이를 보여줄 선수가 포항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물론 그는 2003시즌부터 계속 포항에서 매시즌20경기 이상 뛰었다.

그러나 올시즌 초반처럼 자신의 맹활약이 뒷받침되어포항의 선두를 이끈 적은

거의 없었다.포항의 선두행진으로 자연스럽게 황진성이 대두되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황진성의 맹활약이전반기 내내이어진다면

대표팀 입성이 조심스럽게화제에 오를 것이다.

본인은 그가 대표팀에 입성해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음 하는 마음

크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쉽게받아줄 현실은 절대아니다.

유망주라 불리던 시절에도 한번도 대표팀에 발탁된 적 없는 그다.

그리고 대표팀에는, 기술차이는 어느 정도있을지언정다른 능력도

골고루 갖춘능력 있는젊은 미드필더들이 다수 자리잡고 있다.

사실 몇몇 선수들은 기술 차이도 거의 나지 않는다.체력과 기술력을

동시에 갖춘 선수들이다. 빠른 템포와 압박,패스 플레이를 추구하는

조광래 감독의 구미에 맞는 선수가 되려면 강한 체력은 필수다.

간결한 패스도 해낼 수 있는 황진성에게 약한 체력은 크나큰 장애다.

그래서 황진성이 대표팀에 지금까지 발탁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시간은 많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광래 감독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다. 황진성의 체력은

충분히 그 시간 내에 끌어올릴 수 있다. 황선홍 감독의 빠른 패스 플레이에도

무리없이 적응하고 있으니 체력만 끌어올린다면 조광래 감독의 축구에

적합한 선수가 될 것이다.이르면 전반기가 끝나고 시험차 발탁될 수도 있지만

본인은 넉넉잡아 후반기나 내년시즌이되어서야 뽑힐 것으로 예상된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35)

김성준(Kim Sung-Jun)

나이 : 24

신장 : 174cm, 68kg

위치 : 수비형 미드필더(Defensive Midfielder)

클럽 : 대전 시티즌(Daejeon Citizen)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36)

클럽 경력 : 영희초, 중동중, 언남고, 홍익대학교, 대전시티즌(2009~)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 없음

소개 :지난시즌까지만 해도 대전팬들에게만 익숙했던 이름이었지만

올시즌 대전이 k리그돌풍의 중심이 되면서 김성준의 이름 석자가

국내축구팬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대전이 영입한브라질 공격수 박은호(본명:바그너)가 개막전에 프리킥으로만

2골을 몰아넣으면서부터지금까지 승승장구중이라, 개중에는 박은호가

대전의 돌풍을 이끄는 핵심멤버로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전팬 및 경기를 지켜본 축구팬들은 하나같이 김성준의 활약이 없었다면

지금의 돌풍은 없다고 말한다. 확실히 본인이 지켜본 대전의 활약은

김성준이 중심이 되어이루어지고 있다.그라운드를 활발하게 누비며

상대의 공격을압박하고 공을 가로채는 즉시 동료와 협업 플레이하며

공격작업하는 모습은 확실히 김성준이 대전의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패스할 타이밍과 슈팅할 타이밍을알고 있어곧잘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2009년 대전에 입단하고 지난시즌까지와는다른 모습이다.

물론 왕선재 감독이실리축구를 선언하면서 중심축이 아래쪽으로 쏠린 점이

대전의 돌풍의 핵심이지만 김성준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리그 상위권까지는

올라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그만큼 김성준의 존재는 대전에 없어서는안될

중요한위치에 있다.

김성준은 원래 학창시절에 잘 나가는 미드필더였다.

감각적인 패스와 슈팅으로 축구명문 중, 고등학교에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청소년 대표팀도 거치며향후프로팀에서도 활약할선수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잔부상이 많아 꾸준히 활약하지 못했다.

2009년 홍익대를 나와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한 그는 대전에 의해 2순위로

프로에 진출한다. 당시팀을 이끌었던 김호 감독은 그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하며

그의패스 센스와 중원 장악을 기대했다. 그러나 김성준을 비롯해

선수단 전체가총체적인 부진에 시달렸고, 설상가상 감독 본인이 비리에 연루돼

경질당하는 수모를당하고 말았다. 그의 수석코치 왕선재 감독이 감독대행이 되어

팀을 이끌었지만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김성준 본인도그저그런 플레이로 일관했다.

패스축구를 지향하는 왕선재 감독은 정식 감독이 되어 2010시즌을맞이했다.

그는 고창현을 중심으로팀의 패스축구를 구현했는데,부실한 수비진으로 인해

정작 골을 넣고도 비기거나 지는수모를 당했다. 리그 후반기에 고창현을 울산으로 보내자

공격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gs로부터 임대해 온 어경준의 고군분투가 아니었다면

팀의 공격은 답이 없었을 것이다.김성준은철저한 관리로 다져진 체력으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누비는 것 빼고는특별히 공격에서 눈에 띄는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이렇듯 김성준은 나름 열심히는뛰지만 그 전의 에이스였던 고창현이나 어경준처럼

돋보이지는 못했던 것이다.

향후 전망 :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위에서 언급한대로 왕선재 감독이

실리축구를 선언함으로써중심축을 아래로 형성했고, 이러한 전술이 맞아떨어지면서

수비가 안정되고역습의 과정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김성준이 있다. 덕분에 김성준은'이관우의 후계자'이현웅과 함께

대전팬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후반기에서도 꾸준히 활약할 수 있을까? 아무리 용가리 통뼈라 해도

시즌 내내 경기력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안 그래도 대전은

스쿼드가 빈약해 벌써부터 후반기에 부진하리란 예상이 압도적이다.

k리그가 출범한 이래 하위권팀이 보여준 돌풍은 후반기 들어 잠잠하다 못해

침체되는 사례가상당히 많다. 체력이 달려 전반기만큼의 활동량과 집중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올시즌은 무더운 7,8월에도 경기하기 때문에

대전의 체력관리는 상당히 힘들 것이다. 2005시즌 인천과 2010시즌 sk의 사례처럼

기지를 발휘하여 준우승을 일궈냈기 때문에 시민구단의 큰형님대전이 못하리라는 법은 없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여름 휴식기가 없기 때문에,

올시즌 대전의 돌풍이 전반기를 끝으로 침체될 거라 예상된다.

돌풍의 중심김성준도 후반기 들어 다소 힘에 부칠 것으로 예상된다.

왕선재 감독이 향후를 위해핵심 멤버를과감히 제외하고 2군 선수들에게 기회를주는 식으로

체력 안배를 지혜롭게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37)

정혁(Chung,Hyuk)

나이 : 26

신장 : 175cm, 70kg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측면 미드필더(Side Midfielder)

클럽 : 인천 유나이티드(Incheon United)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38)

클럽 경력 : 토월중, 마산공고, 전주대학교, 인천 유나이티드(2009~)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풋살 대표

소개 : 2009년 인천에 입단해 소리없이 인천의 핵심 미드필더로 성장한정혁.

감각적인 오른발 킥을 보유한 정혁은중앙에서 질 좋은 패스를 뿌려주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골을만드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해낸다.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미드필드 어디서든 뛸 수 있다는 것으로서 감독의 폭넓은 전술운용에

큰 보탬이 된다. 비록2009년에는 경기마다기복이있어매경기주전으로는

나서지 못했지만 2010년 들어한층 더 성장하며 팀에 없어서는 안될

주축 미드필더로 나서게 되었다. 29경기에 출장4골 4도움을 기록한 그는

2010시즌 후반기에 부임한 허정무 감독에게도 신뢰를 받으며

2011시즌에도 인천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다.

그러나 2011년 3월 12일sk와의 경기 도중 부상 당해 당분간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

최소 3개월을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향후 전망 : 이제 프로 2년차이지만 그의 나이는 어느덧 26살.

적다면 적은 나이겠지만공교롭게도 그보다 어린 선수들이

대표팀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클럽에서 이룬 것도그보다

앞서 있어정혁으로선 어느 것도 경쟁이 되지 않는다.

특히 중앙 미드필더는 포화 상태. 기존의 전력들도 자칫하면

벤치멤버가 될 수 있는 곳이어서 정혁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대표팀에 뽑힌다면 중앙이 아닌측면이 될 가능성이높으며

조광래 감독이 그토록 찾던 윙백 자원으로 출장할 수 있다.

정혁은 킥도 좋지만 종종윙어로도 기용될만큼 스피드가 빠르고

크로스도 제법 날카로워 수비력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윙백으로도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혁이좋을 때 부상을 당했으니

그 점이 아쉽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39)

조재철(Cho, Jae-Chul)

나이 : 26

신장 : 176cm, 63kg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클럽 : 성남 일화 천마(Seongnam Ilhwa Chunma)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40)

클럽 경력 : 서귀포중, 서귀포고, 성남 일화 천마(2010~)

우승 경력 : 2010 AFC챔피언스리그 우승

개인경력 : 없음

소개 :그라운드를 폭넓게 뛰어다니며 질 좋은 패스를 뿌려주는 중원사령관.

동료에게어시스트할뿐만 아니라재치있는 2선침투로자신이 직접 해결짓는모습도 보여준다.

2010년 성남에 입단한 조재철은K리그에서 33경기 출장,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데뷔시즌을 치뤘고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성남의 아시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의 공격본능을 가장 잘 보여준 경기는 2010시즌전반기에 열린

수원과의 원정경기. 그는 그날 혼자 2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2-1승리를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AFC 챔피언스리그4강 1차전 알 샤밥과의원정 경기에서도

골을 넣어 팀의 결승진출에 한몫하기도.

그의 이러한 활약 덕분에 성남은 선수층이 얇으면서도 아시아 챔피언이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2010시즌 이후 몰리나, 전광진, 조병국 등

팀의 핵심 멤버들이 줄줄이 빠져나가게 되자 신태용 감독은 조재철을

팀의 구심점으로 삼고 올시즌에 임하고 있다.

향후 전망 : 지난시즌에는 전광진, 김철호 등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매경기 풀타임으로 뛰지는 못했지만그들이 모두 팀을 이탈함에 따라

매경기 선발로뛸 기회를 많이 부여받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신태용 감독이 그를 구심점으로 팀을 개편하였으니

지난시즌보다 좀 더 부담감을 갖고 경기에 임할 것이다.

선수들이많이 바뀐 터라 아직 조직력이 여물지 않은 성남은

아직 승리를 챙기지 못하고 있지만 조재철을 중심으로

조직력이탄탄해지고 라돈치치 등 부상 선수들이 복귀한다면

지난시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팀이랑 붙어도 쉽게 지지 않는

무서운 팀이 될 것이다.이것이 실현되서 조재철이 맹활약 한다면

대표팀에 뽑히지 말란 법은 없다. 다만,윙어로는 지난시즌에실패한 바 있어

중앙 미드필더로 뛸 수밖에 없는데대표팀 중앙미드필더와

플레이스타일이 겹치기 때문에 대표팀에 발탁되기는 매우희박해보인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41)

김근철(Kim, Keun-Chul)

나이 : 29

신장 : 177cm, 73kg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클럽 : 부산 아이파크(Busan I-Park)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42)

클럽 경력 : 풍생고, 주빌로 이와타(01~03), 쇼난 벨마레(2003 임대), 쇼난 벨마레(2004),

대구FC(2005),경남FC(06~09), 부산 아이파크(2010~)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없음

소개 :풍생고 시절에만 해도각종 대회에서 득점왕과 MVP를 수상하는 등

한때 한국축구의 미래를 짊어질유망주로 불렸던 김근철.

그러나 J리그로 건너가4년간 이렇다 할 성과도 얻지 못하고 국내로 복귀하면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나름대로 활약했지만

한국에서는플레이스타일이 한국축구와 맞지 않아한동안

적응에 애를 먹어야 했다.다행히자신의 재능을 극대화시킬 감독들과의 만남으로

소속팀에서 진가를발휘하였고 점차 성장하며

지금은 부산 아이파크의 핵심 멤버 중 한명으로 자리잡았다.

김근철은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다.아기자기하고날카로운패싱과 프리킥,슈팅이 돋보인다.

그러나 몸싸움과 체력, 스피드가약한데다 볼터치시공을 질질 끄는 버릇이 있다.

기술과패스를지향하는 일본에서는 물 만난 고기였는지 몰라도

빠른스피드와강인한 체력을강조하는 한국축구에서는 맞지 않는 옷에 불과했다.

이에 김근철은 2005시즌대구에서 박종환 감독의 권유로

공격형 미드필더에서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바꾸었고

이에 적응하기 위해 무딘 애를 써야했다.

하지만 이것이 보약이되어 김근철은 공수양면에 능한 중앙 미드필더로성장하였다.

예전보다 간결해진 볼터치를 구사할 수 있게 됐고 수비력도 많이 좋아졌다.

덕분에 2011시즌 새로이 지휘봉을 잡은 안익수 감독으로부터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짧은 패스를 선호하는감독이지만

그가반쪽짜리였다면 그를주장으로까지 선임하지는 않았을 터.

김근철은주장이라는 무거운 견장을 팔뚝에 차고팀 플레이에전념할 것을 다짐하였다.

한편 김근철은이름값에 비해 유독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였다.

그의 우여곡절은 프로 데뷔시즌부터 비롯되었다.

2001시즌 j리그 명문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했지만 일본 유망주를 키우겠다는 구단의 방침에 따라

그는 2년동안한경기교체줄장에 그쳤고급기야 2003시즌 j2리그 쇼난 벨마레로 임대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다행히 쇼난에서는 주전으로 인정받으며맹활약했지만

주빌로는 그를 복귀시키지 않고 아예 쇼난과 완전이적을 추진하였다.

이에 j2리그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김근철은 쇼난 벨마레와의 계약조건으로

'이듬해 1부리그 승격불발시 다른 팀으로 이적하겠다'를 걸어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승격이 불발되자그는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먼저k리그의 명문 성남 일화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았다.

입단테스트 선수가 일본에서 활약했던 초고교급 유망주였던 김근철이었기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대부분 그가 성남의 입단테스트에 합격하고 노란 유니폼을 입게 될 거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패싱이 주특기지만 압박이 강한 k리그에서는

통하지 않으며 체력과 스피드가 평균 이하이기 때문이란다. 불합격을 준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의 몸값. 비록 j2리그이지만 재정이풍족해

웬만하면 외국인 선수들에게고액의 연봉을 줄 수 있었다.

김근철도 고액 연봉을 받으며j2리그에서 활약하였다.하지만이곳은실력에 비해 몸값이 높은

선수를 받아줄 용의가 없었다. 이는 다른 구단들도 마찬가지였다. 김근철은이렇게 외면당했다.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낙방하였으니 그의 절망감은 더욱 컸을 터.결국 유일하게 그의영입을 추진한

박종환 감독의 대구fc의손을 잡고 1년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대구에서조차 그는 외면당하고 말았다.

시즌 초반 몇경기 기용되었지만스피드와 수비력, 그리고 팀플레이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박종환 감독이 그를 선발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근철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탈바꿈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2005시즌이 종료되자 그는 재계약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방출되고 말았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상처가 되었다.이때까지 김근철은 실패만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2006시즌 신생팀 경남에 입단하면서 반전을 이룬다.

창단팀의 지휘봉을 잡은박항서 감독이 그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기술 향상에 주력하자

김근철은드디어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2006시즌을 무난하게 소화한 그는 2007시즌 핵심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잡으며 승승장구하였다.

그의 활약으로 팀은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08시즌 구단 수뇌부와의불화로 박항서 감독이 사퇴하고 조광래감독이 지휘봉을 건네받았을 때도

그는 여전히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조광래 감독은아기자기한 패스축구를 지향하고 있었고

이를 가장 잘 소화할 선수가 김근철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광래 감독의 주축 선수로서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2009시즌 초반 뜻밖의 부상을당하면서

그의 앞길에짙은 안개가 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최소 재활에만3개월 이상 걸리는 부상이었기에 전반기를 고스란히 날려먹은 김근철이었다.

조광래감독은 여전히 그를 신뢰했지만 그를 대체할 선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빠른 성장을 이루며 주축을 이루자

결국 2010시즌 재계약에 실패하고 자유계약신분으로풀리고 말았다.

다시 한번 시련을 당한 김근철. 하지만 두번째 시련과 달리 경남에서 활약했던 가닥이 있는지라

많은 구단들이 관심을 보였다.이 중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부산이 김근철과 계약을 맺었다.

김근철은 황선홍 감독의신뢰를 받고 주전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으며

유호준과 함께 막강한 투 볼란테를 이루며무난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후반기 들어 체력고갈로 인해 부진을 면치못하였다.

향후 전망 :2011년 김근철은 박희도와 함께국가대표팀의 물망에 오른 선수다.

특히 경남 시절 조광래 감독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바 있기에 그의 발탁은 더욱 가능성 있어 보였다.

그러나 최근 열린온두라스, 대구fc 평가 2연전에 나설 명단에 발탁되지 못하였다.

그가 뽑히지 못한 것은 매우 애석하나 이는 충분히 납득이 되는 결과였다.

최근 한국 대표팀은 유능한 미드필더가 풍족한 상황이다.

기성용, 구자철을 비롯해 이용래, 김정우, 고창현 등기술력과 패싱력은 물론

수비력과 스피드, 체력을 고루 갖춘 중앙 미드필더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표팀에 들지 않은 오장은, 김재성, 신형민, 하대성, 박현범등 각 팀마다내로라하는

선수들이있어 김근철의 대표팀 발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김근철은 체력이 약하고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템포 느린 플레이로

빠른 패스축구를 구사하는 조광래감독의 대표팀에서는부합되지 않는다.

결국 대표팀에 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단점을 고쳐나가야 하는데 워낙 중앙 미드필더가

포화상태에 있는지라 대표팀 발탁조차 힘들어보인다.

본인은 김근철이 무난히 k리그에서활약하다가변방 리그로가서 현역을마무리 할 것 같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43)

안성남(Ahn, Seong-Nam)

나이 : 28

신장 : 174cm, 68kg

출생 : 인천광역시 강화도

위치 :공격형 미드필더(Attacking Midfielder), 윙 포워드(Wing Forward)

클럽 : 광주 FC(Gwangju FC)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44)

클럽 경력 : 통진고, 중앙대, 울산미포조선, 강원FC(09~10),광주FC(2011~)

우승 경력 : 2007, 2008내셔널리그 우승

개인 경력 : 2007 제21회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내셔널리그 선수상

소개 :2007,2008시즌 당시'괴물'이라 불리던 김영후와울산 현대미포조선의전성기를 이끌며

내셔널리그를 평정한핵심선수 중의 한명.순간 스피드와 반박자 빠른 슈팅이 장점인

안성남은 내셔널리그 평정 후2009시즌신생팀 강원FC에우선순위로 입단하였다.

당시 중원 뿐만 아니라 유사시 윙포워드로도 뛸 수 있었던 그는

김영후, 이을용, 정경호와 함께 팀을 이끌 핵심 선수로 거론되었으나

개막전 도중 부상을 당해 잠시 휴식을 취해야 했다.

오히려후보 선수였던 윤준하가개막전에 골을 넣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점차 잊혀진 선수가 될 뻔했다.

다행히 부상에서 털고 일어난 그는내셔널리그 정상급 선수답게

제 기량을 발휘하며 강원의 공격축구를 이끌었다.

2010시즌에는 5골 3도움을 기록하며 고군분투하였다.

그러다 2011시즌 신생팀 광주FC로 1년간임대이적,

프로 생활3년만에 또다른신생팀에서 새시작한다.

향후 전망 :안성남은내셔널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프로진출에 성공,

프로 생활 3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광주에서의플레이는예전만치 못하다.

중원사령관답지 않게볼배급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기 때문.

자신의 장점인 반박자 빠른 슈팅도 골 결정력 부족으로 번번히 골문을 외면한다.

이렇게 되자 광주팬들은 벌써부터 안성남의 부진을 질타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모습을 끝내 고치지 못한다면,광주 완전 이적은커녕

강원에서도 팽 당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내셔널리그로 복귀할 수 있는 상황.

전반기 내내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후반기에는 뛰고 싶어도

감독이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45)

이관우(Lee Kwan-Woo)

나이 : 34

신장 : 175cm, 69kg

출생 : 서울특별시

위치 : 공격형 미드필더(AttackingMidfielder), 윙 포워드(Wing Forward)

클럽 :없음

클럽 경력 : 중화초, 한양중, 한양공고, 한양대학교(96~99),대전 시티즌(00~06),수원 블루윙즈(06~10)

우승 경력 :K리그 우승(2008), FA컵 우승(2001,2009,2010),K리그 컵대회 우승(2008), 팬퍼시픽 챔피언쉽 우승(2009)

개인경력 : A매치 13경기 출장 1골 기록

2002 푸마 베스트 일레븐MF 부문 선정

2002험멜 코리아 스포츠투데이 선정 올해의 선수상(재기상)

2003 험멜 코리아 스포츠투데이 선정 K리그 베스트 일레븐

2003 K리그 올스타 인기상

2003올해의 키카골상

2003, 2006, 200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소개 :한때 k리그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이관우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하향세에 접어든 노장 미드필더다.

수원에서 방출통보를 받자 다른 팀을 알아보았지만

몸값이 비싸 선뜻 그를 받아들이는 구단은나오지 않았다.

친정팀 대전이 연봉 1억원선에서 그를영입하려 했지만 이관우 측이거절해 결렬되었다.

이관우는 아직도 팀을 알아보고 있지만깜깜무소식이다.

그의 하락된 위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그가 밟아온 길을 무시하면 곤란하다. 비록 그를 부르는 구단은 없지만

그는4년 전까지만 해도 수원의 경기력을 좌우하는 핵심멤버였고

국대에도 드나들던 k리그최고의 테크니션이었다. 비록 국대에서는 프로축구에서 보여준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오래가지 못했지만 워낙 프로축구에서 보여준 눈부신 플레이가 있었기에

그를 옹호하는 팬들이 많다.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팬들의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는 멋진테크닉과감각적인패스는

자칫 칙칙할 수 있는 그라운드를 눈부시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팬들은 그를 '시리우스'라고부르며 칭송하는데 이때문에

현재 하향세를 걷고 있는 이관우의 모습에 안타까워 하고 있다.

대전팬들은 여전히싫어하는 팀 수원으로 이적한 이관우를 기다리고 있으며

수원팬들은 고액 연봉 이관우가3년간 경기에 못 나왔음에도방출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지금도빅버드에 가면 이관우이름 석자가 마킹된 수원 유니폼을 입은팬들이 많다.

그만큼대전과 수원에서 보여준 그의 플레이는 매우 눈부셨던 것이다.

이쯤에서 이관우의 발자취를 살펴보자.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97 청소년 대표팀에서 보여준군계일학의 플레이로 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1999년 한양대를 졸업하고 일본 j리그아비스파 후쿠오카와 협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당시 프로축구 드래프트에 참여하고 있던 상태여서 이중 계약 논란이 일었다.

자신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자이관우는 가고 싶었던j리그행을 포기하고

가난한 시민구단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였다.

이 때문에 그를 좋게 보지 않은 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논란은이관우가 활약하자 금방 가라앉았다.

그가 눈부신개인기와 드리블, 자로 잰 듯한 패스,멋진 슈팅을 구사하자 팬들은 그를 응원했다.

하지만예전부터문제였던잦은 부상에 계속 시달려팀에많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대전의 선수층이 워낙 얇아 성적 압박에 시달리던 감독은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그를

계속 내보냈다. 이 때문에 이관우는 2002시즌이 끝날때까지 부상 악령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나설 때마다 군계일학의 플레이를 보여주며 이름값을 해냈다.

2001시즌 12경기 6골 4도움을 기록했고2002시즌대전에FA컵 우승을 안겼다.

이태호 감독이사퇴하고 최윤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3시즌부터는

그동안 자신을괴롭히던 부상에서 완벽히 벗어났다.

그는체력이 약해매경기모두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지만

38경기에 출장, 4골 5도움을 기록하며자신의 몫을 해냈다.

더불어대전 시민구단의 기적을 이끈 주역으로 발돋움, 평균 관중을 대폭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이후 2006시즌 전반기까지대전의 핵심 미드필더로서 대전의 공격을 이끈 그는

2006년 8월정들었던 대전을 떠나 축구수도 수원으로 이적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대전팬들의 극구 반대에 부딪혔다.

대전을 대표하는프랜차이즈 스타가 싫어하는 팀 수원으로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대전 서포터는 2001년수원 홈구장에서 수원 서포터와 다투던 중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수원 홈구장을 난장판으로 만든 전력이 있다.

5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 일로그 당시에도서로의 감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다.

이관우가 수원으로 이적하면대전팬들의 충격이 매우 클 것이다.

이에 대전은팬들의 상태를 염려해수원의 이적을 철회했다.

그러나이관우는이 일에 반발하며 이적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팬과 선수 사이에 낀 대전은 고심을 거듭하다 결국 이관우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전팬들에게아쉬움이 담긴이별글을 남긴이관우는

자주색 유니폼을 벗고 수원의 푸른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당시수원의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기에 그에게 짊어진 부담은 상당했다.

선굵은 축구의 신봉자 차범근 감독의 전술에서 과연 빛날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관우는 첫경기부터 빼어난 플레이를 펼쳤다.

특히 GS에 멋진 발리슛으로 골을 성공시킨 원정경기는

비록 승부를 가리지 못했으나그가 골 세레모니로

수원팬들에게 거수경례를 펼친 모습은 수원팬들을 충분히만족시켰다.

이처럼 수원맨이 되기로 선언한 이관우는 수원을 위해 대전에서 보여준 화려한 플레이를보여주었다.

테크니션 부재로 성적부진에 시달렸던 수원은 이관우의 합류로확연히 달라진 경기력을 펼쳤고

매경기승리를 거듭하였다.

흥이 오른 수원은파죽지세를 거듭, 후기리그 1위를 달성하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한다.

하지만김학범 감독이이끄는 성남에 1,2차전 모두 경기를 내줘준우승에 그치고 말았고

이어 열린 FA컵 결승전에서도 전남에 패하자 모두 허탈했다.

이관우도 아쉽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자신의합류로 수원이 환골탈태했다는 극찬을 받은 것만으로도

그의2006시즌 성적은 매우 우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선굵은 축구를 표방하던 차범근 감독도 이관우를 칭찬하며2007시즌에도 적극적으로 기용하였다.

안정환의 합류로 꽃미남팀으로 거듭난 수원은 화려한 경기력으로 2007시즌을 뜨겁게 달구었다.

비록 덜 완성된 경기력이 도마에 올랐지만 이관우 같은스타 선수들의 맹활약으로

정규리그 2위를 기록했다. 2006시즌의 실패를 발판삼아 이번에는 반드시 우승하리라 다짐했던 수원.

그러나 이번에는 포항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2006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포항의 덜미를 잡았던 수원은

반대로 포항에 덜미를 잡혀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하였다. 2년 연속 우승에 실패한 것이다.

다행히 2008시즌 차범근 감독 부임 이래 전무후무한 최고의 경기력으로K리그 우승을 차지,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정작 이관우는 부상에 신음하며 제대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GS와의 챔피언결정전에도 결장해 자신의 플레이로 우승을 이끌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아쉽게도그는 더 이상 수원에 기여하지 못했다.

2009시즌에 이어 2010시즌에도 부상을 거듭하며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그의 복귀를 간절히 바라오던 차범근 감독은 그를 더 이상기용하지 못하고 사퇴하고 말았고

그의 후임으로 들어온 윤성효 감독은경기력이 떨어진이관우를 외면하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이관우가 걸어온 길이다.

향후 전망 : 이관우는 대전에입단할 기회가 있었지만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스스로 대전 입단을 거부했다.

축구팬들은 이에 단지 핑계가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냈지만일각에서는인상적인 플레이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그를옹호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관우는

국내 K리그 이적이 물건너갔고 해외진출을 알아볼 수 밖에 없다.

이관우 측은 일본과 중국 리그를 알아보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수원에 방출되기 전부터

이적을 추진했다는소식이 있었기에

지금도 이적 소식이 들려오지 않은 것은 협상이여의치 않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동남아 행까지도 고려할지도 모르지만 본인이 아는 싱가폴리그는 이미 이적시장이 닫힌 상태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나태국, 베트남이 있는데 과연 그가명예를 버리고동남아로 갈지 의문이다.

갈 수만 있다면 연봉을 대폭 삭감해야 하는데과연...

아니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은퇴를 심각히 고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3년 연속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에

미련이 많이남았다는 점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현실도 현실인지라 심각하게갈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인 생각에는 은퇴 아니면여름 이적시장에입단 둘 중 하나를 택할 것 같은데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래 고명진과 이현승은2012.8.19에 쓴 글입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46)

고명진(Ko, Myung-Jin)

나이: 25

신장 : 185cm, 77kg

출생 : 경기도 군포시

위치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왼쪽 미드필더(Left Side Midfielder)

클럽 : gs -대한민국 K리그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47)

클럽 경력 : 석관중(중퇴), 안양LG(2003),gs(2004~)

우승 경력 : 2006, 2010 K리그 컵대회 우승

2010 K리그 우승

개인 경력 : 없음

소개 : 안양 시절부터 내려온 막강한 왼발미드필더 라인의 계보를 잇는 선수.
그는 테크니션 왼발미드필더로서 팬들을 즐겁게 하는 개인기를 갖추었다.
순간 스피드와 섬세한 발재간을 활용한 드리블 돌파가 첫째요, 기회를 창출하는
날카로운 왼발킬패스가 둘째니 이것을 가장 잘 활용하는 이가 바로 고명진이다.
중원에서의 강한 압박을 저 두가지 능력으로 멋지게 벗겨내며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준다. 최근 들어서 측면보다는 중앙의 우수자원들이 많이 배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이 중 하나가 고명진이라 하겠다.
고명진은 현재 25살이지만 2003년에 입단하여 햇수로 8년차가 되어가는 베테랑급
미드필더다. 그가 입단할 당시에는 수원과 안양이 앞장서 적극적으로 중학생 유망주들을
대거 영입하던 시대였다. 그들은 유망주들을 영입하면서 그들이 다니던 학교를
중퇴시켰는데 이는 학업을 중단시킴으로써 군면제를 시키고자 위함이었다.
덕분에 그 당시 영입된 선수들은 군 입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며 프로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마음껏 기량을 키울 수 있었다.
고명진도 이같은 길을 걸었다. 그는 당시 조광래 감독으로부터 풍부한 잠재력을 인정받아
입단한 지 1년도 채 안된 2004시즌 1군 출장 기회를 부여 받았다.
비록 컵대회 5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입단만 하고 경기에 뛰지 못해 방출되는 선수들과
비교한다면 상당히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조광래 감독의 후임으로 들어온 이장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5시즌에는 K리그
1경기에 출장하였고 이듬해 2006시즌에는 K리그 13경기, 컵대회 6경기 도합 19경기에
출장하였다. 당시 고명진은 K리그에서 프로 데뷔 이후 첫 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하지만 선발로 뛰기에는 아직 그 실력이 성숙치 못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2007시즌 이장수 감독의 후임으로 들어온 터키 출신의 명장
세뇰 귀네슈 감독으로부터 초반에 적지 않은 기회를 받았으나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신 그의 경쟁자인 이청용과 기성용이 놀라운 실력향상을 보이며
gs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선수로 자리잡았다. 특히 기성용의 성장은 그의 벤치행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같은 중앙 미드필더인데 실력은 그가 더 뛰어났으니 유망주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귀네슈 감독도 그를 기용하기가 마뜩치 않았을 것이다.
이청용과 기성용의 맹활약은 2008시즌까지 계속되었고 덩달아 그의 입지도 많이 좁았다.
다행히 이들이 너무 빨리 급성장하여 유럽으로 떠나게 되니
고명진의 입지는 다시 넓어졌다.
2009시즌 중반 기성용이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으로 떠나자
고명진은 2006시즌 이후 가장 많은 20경기 출장 기회를 부여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2골 1도움을 기록, 데뷔 이후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였다.
2010시즌은 그에게 우울한 시즌 중 하나일 것이다. 2009시즌 많은 기회를 주었던
귀네슈 감독이 사퇴하고 그 후임으로 포르투갈 출신의 베테랑 감독 빙가다 감독이
들어오자 출장기회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패스플레이를
지향하던 귀네슈 감독과 달리 빙가다 감독은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 실리적인
축구를 지향했다. 그와 더불어 성장 가능성보다는 완성된 베테랑 선수들을 선호했다.
국가대표급 골키퍼 김용대, 전북의 중원 살림꾼 하대성, k리그 정상급 풀백 현영민과
최효진 등이 영입된 것이 좋은 예다. 하지만 고명진에게 가장 치명적인 예는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 에이스 미드필더 제파로프의 영입이었다.
2008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포항을 벼랑끝까지 몰고갔던 적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갖춘 이 선수는 이미 아시아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으며
유럽 명문 첼시의 입단 테스트를 권유받을 정도로 기량에 있어 아시아 정상급으로
평가받던 선수였다. 그의 입단은 곧 고명진에게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빙가다 감독은 고명진의 플레이가 실리적인 축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
벤치에도 잘 기용하지 않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우울하게도 gs는 2010시즌 K리그를 제패함으로써 무관의 한을 씻어냈다.
고명진은 2010시즌 우승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했다.
그러던 중 뜻밖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자신을 기용하지 않은 빙가다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너무 비싼 몸값을 요구하는 바람에 gs 구단측이
난색을 표하자 빙가다 감독은 이별을 선언했다. 이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고명진 입장에서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주어진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빙가다 감독의 후임으로 들어온 인물은
j리그에서 삼류 감독으로 낙인 찍힌 황보관 감독이다. 그는 취임 후 가진 환영식에서
아스날 같은 플레이를 보여주겠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 일본에서 보여준 그의 스타일은
발 빠른 윙어를 활용한 전형적인 킥 앤 러시였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스타일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은 채 gs 선수단을 지휘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과 배치되는 고명진을
배제시키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수비형 미드필더들을 기용했다. 고명진은 또다시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황보관 천하는 3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수원전 개막전 패배 이후 극심한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영영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 국내는 물론 기대를 걸었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부진하자 구단 프런트들은 그를 조기에 경질시키고야 만다.
황보관의 후임으로 여러 후보군들을 물색했으나 쉽지 않았다. 결국 수석코치 최용수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하여 남은 시즌을 이끌게 했다.
뜻하지 않게 감독 지휘봉을 잡은 최용수 감독은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의 구상에 두었던
선수들을 기용했다. 황보관 감독의 총애를 받았던 일부 선수들은 그로부터 배제되었다.
대신 그에게 버림받은 일부 선수들은 최용수 감독대행의 총애를 받았다.
고명진이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하여 미드필더진을 활보했다.
위에서 언급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니 상대방 중원이 이에 호응하기라도 하듯
무너졌다. 그의 플레이가 통하자 gs는 언제 그랬냐는 듯 훨훨 날기 시작했다.
그의 맹활약 이후 gs는 승승장구를 거듭, 10경기 이상 무패행진을 찍었다.
그들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당장 우승까지 할 기세였다.
하지만 홈에서 치뤄진 플레이오프에서 울산의 철퇴축구에 맥없이 무너지며 우승문턱에서
좌절했다. 고명진 개인으로서도 매우 안타까웠을 것이다. 자신의 플레이가 빛을 발할 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면 gs를 넘어 국가대표팀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희망과 좌절이 뒤섞인 2011시즌을 뒤로 하고 고명진은 2012시즌을 맞이했다.
현재 24경기에 출장중이며 gs의 치열한 우승경쟁에 보탬이 되고 있다.

향후 전망 : 고명진의 전성기는 2011시즌이다. 최용수 감독(2011시즌은 감독대행)의
배려에 보답하고 있던 그는 자신을 프로의 길로 인도한 조광래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고 태극호에 승선했다. 비록 가나와의
친선경기에 출장하지 못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벤치에도 못 나왔던
것을 상기한다면 실로 대단한 발전이다. 슈팅을 보완하는 등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더욱 갈고닦는다면 기성용과 구자철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보여주고 있는 고명진의 플레이는 2011시즌보다 다소 못하다.
슬럼프는 아니지만 상대방에게 자신의 수를 읽히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현재 2012시즌 24경기 출장하여 1골 2도움을 기록중이다.
출장 수는 여전히 많지만 득점포인트만 보면 2골 7도움이었던 작년보다는
많이 초라하다. 이는 데얀과 몰리나의 공격집중도가 높아졌다는 방증이 될 수 있지만
그래도 팬들의 입장에서는 작년의 전성기가 그리워질 법하다. 최용수 감독의
gs가 1위와 2위를 왔다갔다하고 있다지만 꾸준히 보여주는 gs의 플레이는
어정쩡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감독의 자리까지 위험할 수 있을 정도로
팬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 특히 그에게 가장 큰 치명타는 수원에게
무기력할 정도로 약하다는 것이다. 그는 경기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수원을 평가절하하며 자신의 팀을 높였지만 결과는
망신 중의 개망신. 치열한 난투 끝에 얻은 아쉬운 패배도 아니고 무득점 완패를
거듭하니 이를 지켜보는 gs팬들의 눈은 분노로 시뻘개지고 가슴은 옥죄는듯
답답해지고 좁아진 목구멍은 뜨거운 열로 달궈진 육두문자가 거침없이 입을 통해
터져나올 법하다. 그들은 잘하든 못하든 최용수 감독의 사퇴를 바라고 있다.
고명진에게는 반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8월 19일에 열린
수원과의 원정경기에서 2-0으로 완패, 이번시즌도 정규리그에서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미 전반기 수원과의 수퍼매치에서 똑같은 점수로 패해
gs 팬들이 들고 일어난 만큼 이번시즌을 넘기기는 다소 어려워보인다.
만약 플레이오프전에서 수원을 만나 똑같은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최용수 감독의
입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최용수 감독이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수원을
멋지게 꺾고 전북까지 이기고 우승을 해야지만 가능해보인다.
최용수 감독의 입지는 고명진에게도 절실하다. 최용수가 살아야 고명진도 산다.
고명진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48)

이현승(Lee, Hyun-Seung)
나이 : 25
신장 : 172cm, 69kg
출생 : 경기도 수원시
위치 : 공격형 미드필더(Attacking Midfielder), 섀도우 스트라이커(Shadow Striker),윙 포워드(Wing Forward)
클럽 : 전남 드래곤즈(Chunnam Dragon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49)
클럽 경력 : 율전중, 수원공고, 전북 현대 모터스(06~09), gs(2010), 전남 드래곤즈(2011 임대)
전남 드래곤즈(2012~)
우승 경력 : 2006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9, 2010 K리그 우승
개인 경력 : 2006 5월 10일 K리그 통산 최연소 득점(17세 4개월 26일)
2006 FIFA 클럽 월드컵 최연소 출장 기록(17세 11개월 27일)
2007년 4월 4일 K리그 통산 최연소 어시스트 해트트릭(18세 4개월)
소개 : 캐나다에서 열린 2007 FIFA 20세 이하 월드컵을 기억하는가.
그 당시 아침에 열리던 이 대회는 개막 전까지만 해도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기성용, 이청용, 심영성, 신영록, 박주호, 최철순, 신광훈 등
당시 K리그에서도 주목받던 유망주들이었으나
네덜란드에서 열린 2005 20세 이하 FIFA 청소년 대회만큼의 뜨거운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이 참가한 AFC 2007 아시안컵과 개최시기가 겹친 것이
컸지만 선수들의 면면도 2005 대회 당시 박주영과 같은 수퍼스타급 선수가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대회가 진행될수록 언론과 팬들의 관심이 뜨거워졌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아기자기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스타일을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청소년 레벨에서 정상을 노리던 팀들을 상대로
주눅들지 않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팀을
만나면 긴장으로 인해 제 플레이를 못하는 모습을 상기한다면 그 당시에 보여줬던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비록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보따리를 쌌지만 강호들과 대등하게 경기를 펼치는
모습은 팬들로 하여금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팀을 지휘한 조동현 감독 또한
좋은 감독으로 칭찬받았다. 조별예선을 탈락하고도 이러한 칭찬을 받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기이하다.
어쨌든 이 이야기를 왜 이현승 소개에 꺼냈냐하면 이현승도 이 팀의 일원이라 적었다.
비록 주전이 아닌 서브였지만 교체 투입 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수퍼서브였다. 이현승은 작은 키의 핸디캡을 왕성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패스를
바탕으로 한 유기적인 플레이를 앞세워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한국축구를 이끌어 갈 재능으로 인정받았다.
이현승은 수원공고 시절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재능있는 선수였다.
그는 당시 K리그 수원 블루윙즈 경기의 볼보이로 참가해 프로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특히 고종수의 짜릿한 킬패스를 보면서 자신도 그처럼 되고 싶다 결심했다.
그는 그의 바람대로 2006년 프로에 입단해 전북 현대 모터스의 초록색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신인 감독이었던 최강희의 눈도장을 받고 1군에 든 그는 수퍼 조커로서 K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했다. 신인 다운 패기넘치는 움직임과 예사롭지 않은
공간 창출 능력으로 주목받은 그는 데뷔시즌에만 K리그 17경기를 소화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3골 1도움을 기록했으며
K리그 최연소 득점도 기록했다. 그리고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에 열린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멕시코 명문 클럽아메리카와의 경기에 출장해
대회 최연소 출장 기록을 세웠다. 게다가 2007시즌 K리그에서는
최연소 어시스트 해트트릭을 기록, '최연소의 사나이'라는 기분 좋은 별명을 얻는다.
이후 그는 꾸준히 선발과 조커를 오가며 경기에 출장, 어엿한 전북의 1군 선수로 활약했다.
2009시즌 전북에서 20경기 출장 4골 2도움을 기록, 전북의 통산 첫번째 우승을 안겨준
이현승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팀을 떠날 마음을 가졌다.
그를 영입하고 싶은 팀들의 유혹이 거셌기 때문이다. 그 중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팀은
gs였다. 당시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 등 최근 한국축구를 이끌어가고 있는 스타들의
요람으로 이미지를 굳혀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곳이었다.
빅클럽이면서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신선한 팀에서 그는 뛰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전격적으로 gs에 이적, 프로 2번째 팀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입단은 너무 불행했다. 입단시기가 너무 안 좋았다.
당시 그런 이미지를 보여준 귀네슈 감독은 이미 짐을 쌌다.
대신 들어온 포르투갈 출신의 베테랑 감독 빙가다는 철저한 실리 축구를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잘하는 유망주는 기용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과감하게 내치는
냉정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연고이전 이후 한번도 k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해 우승에 목말랐던 구단의 방침에 따라 거액의 자금을 들여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이현승도 그 자금으로 들어왔지만 공교롭게도
그의 자리는 빙가다 감독의 입맛에 맞는 선수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현승은 분명 좋은 선수지만 공격수가 갖춰야 할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믿음직한 요소인
골 결정력이 부족했다. 가장 기량이 좋았던 2009시즌에도 4골 2도움이라는
다소 초라한 기록을 세웠다. 하물며 기복이 좋지 않을 때라면야.
그는 빙가다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된 채 2군 선수로 전락했다.
3경기 출장에 그친 채 그는 2010시즌을 보냈다.
전북에서는 수퍼 서브로서 맹활약했던 선수였는데 gs에서는 2군이라는 사실은
그를 괴롭게 했다. 그는 다른 팀에 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미 마음이 떠난 그는 하루 빨리 이곳을 탈출하고 싶었다.
완전 이적은 허용되지 않았다.
구단입장에서는 그가 비록 2군이지만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이기에
그를 다른 팀에 보내기가 아까웠을 것이다.
구단은 고심 끝에 그를 전남 드래곤즈에 임대시켰다.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얇은 전남이라면 그에게 더 많은 출장기회를 부여해줄 것이라
믿었다. 이현승은 정해성 감독의 품에 안겼다. 그는 전북 시절처럼
다시 한번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싶었다.
훈련을 열심히 하면서 감독의 지시를 잘 따랐다.
그는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선발 출장했다. 그의 성숙한 플레이가 빛을 발했다.
공격의 키로 자리잡으며 팀의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
상대를 뒷공간을 여는 치명적인 패스로 공격의 포문을 연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슈팅을 시도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4골 2도움을 기록했다.
28경기에 출장한 기록치고는 다소 초라하다. 하지만 전남 팀 자체 득점력이
저조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현승의 기록은 기록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경기력 자체에서는 이미 전남의 실질적인 에이스다. 그는 경기를 통해
자신의 부활을 천명했다. 그의 부활은 조광래 감독의 눈도장까지 받는 데 성공했다.
비록 국가대표팀 최종승선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보여준 경기력은 팬들의 주목을
다시 자신에게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k리그에서도 인정받는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향후 전망 : 2011시즌에서의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이현승은 gs의 속박에서 벗어나
완전한 전남의 일원이 되었다. 완전 이적을 성사시킨 그는 2012시즌을
맞이하여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준비를 마쳤다. 그는 더 나은 플레이로
전남을 돌풍의 팀으로 거듭내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하지만 2012년 8월 19일 현재 그는 매우 절망적이다.
자신의 부활을 이끌어 준 전남이 최하위에 처져 있기 때문이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꼴찌를 상상하지 못한 그들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골 가뭄과 어이없이 무너지는 수비진으로 인해
꼴찌가 현실이 되었다. 선수들 면면은 분명 경쟁력 있다.
올림픽대표팀 붙박이 윙백 윤석영을 비롯해 투쟁적인 수비수
안재준, 베테랑 풀백 이상호, 대전의 숨은 살림꾼
한재웅과 전남 유스의 보물 김영욱과 정준연, 그리고 이번에 신인 드래프트로
들어온 심동운 등 k리그에서는 한 가닥 하는 선수들이다.
그러나 경기를 거듭하면서 동료들간의 불협화음이 일어나더니
급기야 무너져버렸다. 연패를 거듭할수록 선수들의 의지는
상실되어갔고 급기야 포기상태까지 이르렀다. 최근 정해성 감독이
사퇴하고 그 자리를 코치였던 하석주가 이어받았는데, 하석주는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며 선수단에게 따끔히 경고를 줬다.
그만큼 선수단 분위기는 최악이다. 다행히 이현승은 그런 케이스에 속하지
않은 듯하다. 하석주 체제에서도 꾸준히 선발로 뛰고 있다.
자신의 부활을 이끌어 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였으니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분위기를 추스르고자 더 열심히 뛸 것이라 믿는다.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해낸다면 어떤 팀에서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빅클럽 레벨은 아니더라도 그 아래 레벨에서는 에이스로 활약할 수 있는
선수이니 기대해본다.







프로팀 유망주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50)

윤빛가람(Yoon, Bitgaram)

나이 : 22

신장 : 178cm, 70kg

출생 : 경상남도 창원시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윙 포워드(Wing Forward)

클럽 : 경남 FC(Gyeongnam FC)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51)

클럽 경력 : 김해중, 부경고, 중앙대학교(2009 중퇴), 경남FC(2010~)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 A매치 6경기 출장 2골 기록 중

2010 K리그 신인왕

소개 :화려한 드리블과날카로운 패스, 감각적인 슈팅은 물론, 어린 나이답지 않게

경기조율을 잘해부경고 시절 '천재 미드필더'라는 소리를 들었던 윤빛가람.

또래들 중에서도 실력은 단연 톱이어서 17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했다. 하지만한국에서 열린 청소년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말미암아

여론으로부터외면당한데다자신도 K리그와 관련된 부적절한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올라 맹비난을 받은 뒤부터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바 있다.

하늘이 도우려는지 그를 지켜보았던블랙번에서 입단 테스트제의를 해

프리미어리거가 되는가 했지만이마저도 실패,

결국쫓기듯 중앙대 입학을하게 되면서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만 윤빛가람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2009년 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윤빛가람은뒤쳐지지 않기 위해 프로 입단을 결심,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한다.다행히 조광래경남 감독의 눈에 든 그는

드래프트 2순위로 경남에 입단할 수 있었다.다소 몸상태가 안 좋은 윤빛가람이었지만

그의 재능을 인정한 조광래 감독은 그가프로에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그를 집중 조련시켰다. 효과는 그대로 그의 경기력으로 드러났다.

2010년 2월 27일 울산 현대와의 K리그 개막전에서후반 37분 교체투입되어

데뷔전을 치룬 윤빛가람은 5월 26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포스코컵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그러더니이어 열린6월 2일 수원 블루윙즈, 6월 6일강원과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신인왕 후보 1순위로 껑충 뛰어올랐다.윤빛가람의 활약과 맞물려

성적도 승승장구한 경남은 언론으로부터 '新 조광래의 아이들'로 불리기 시작,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팀이너무 잘나갔던 탓이었일까?

2010 남아공 월드컵이후 공석이 된 감독직의 주인을 찾지 못한 축구협회는

경남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조광래감독을불러들인다.야망이 있었던 조광래 감독은

축구협회의 제의를 수락하면서도 클럽 감독과 병행하겠다는의리를보였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하자 할 수 없이팀을 떠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경남은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내세웠으나 전반기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다행히 윤빛가람 및 대부분의 선수들이 고군분투한 끝에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결과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해

아쉬움을 남겼다.윤빛가람은 정규리그의 활약으로 신인왕에 올랐으나

팀의 우승에 기여하지 못했기에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따지고 보면조광래 감독의 대표팀행이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킨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는데대표팀수장이 된 조광래 감독이 윤빛가람을 호출한 것.

거기에 월드컵에서 만났던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 선발 투입되는영광까지 누렸다.

적잖은 부담을 가진 윤빛가람이지만 그는 해냈다.전반전에데뷔골을넣으며

감독의 데뷔전 승리에 일조한 것이다.덕분에 조광래의 황태자로급부상하였다.

윤빛가람은 이후 계속 경기에 투입되며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비록 2011 아시안컵에서는 구자철, 기성용, 이용래 등에 밀려 벤치에 앉았지만

간간이 조커로 투입되며 분위기 반전에 기여하였다. 특히2011년 1월 23일

이란과의 8강전에서0-0으로피말리는 접전을 펼치전 연장 전반 추가시간,

횡돌파 후 그림같은 결승골을 넣지 못했다면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은더욱 힘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향후 전망 : 2011 아시안컵이 아쉽게마무리된 후 윤빛가람은 소속팀 경남으로 돌아가

팀의 막바지 훈련에 합류하였다.이적 논란이 있었지만그 논란을 잠재운 그는

2011시즌 강원과의 1라운드원정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열릴 대표팀 평가전을 위해 대표팀 캠프에 합류한 그는온두라스전 대신

파주에서 대구와의 연습경기에 출장해2골을 터뜨렸다. 비록 2군 멤버로 참가한 셈이지만

2군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침으로써대표팀 경쟁에 대한 전망을 밝게 했다.

그러나 그의 경쟁자들과의경쟁은매우 힘들어보인다.

일단 유럽에 진출한 구자철을 비롯해 김정우, 기성용, 이용래 등경험과실력 모두 갖춘

A급 플레이어들이 즐비하다. 구자철이 독일에서 후보로뛴다는 점이 호재로 작용할 수 있겠으나

선배 김정우가 승승장구하고 있어 녹록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윤빛가람 그조차 구자철, 김정우에 비해나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당분간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K리그에서 더욱 농익은 플레이를 펼쳐주어야

하겠고 뒤이어열릴 평가전이나 월드컵아시아 예선에서인상적인 활약을 펼쳐줘야

비로소 주전 입지를 다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52)

김영욱(Kim Young-Wook)

나이 : 21

신장 : 177cm, 72kg

위치 :공격형 미드필더(Attacking Midfielder), 오른쪽 윙백(Right Wingback)

클럽 : 전남 드래곤즈(Chunnam Dragon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53)

클럽 경력 : 대동초, 광양제철중, 광양제철고, 전남 드래곤즈(2010~)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 없음

소개 : 고교시절 고교 최고의 미드필더로 각광받은 바 있는 또 한명의 기대주.

초등학교 때부터각급 연령별 대표팀에참가하고 있는 김영욱은

지동원, 이종호와 함께전남을 대표하는 유망주이며 현재이광종 감독이이끄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의 중원사령관으로 활약중이다.

스피드를 살린 드리블 돌파, 너른 시야를 바탕으로 하는 날카로운패스,

기회가 있을 때 직접 마무리짓고자 하는골 욕심을 갖춘 김영욱은

학창시절, 체격이 매우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영리한 플레이로 축구부 뿐만 아니라 대표팀에서도 에이스급으로 활약하였다.

그래서지동원과 함께 전남에 전격 입단했을 때는 그에 대한팬들의 기대가 매우 높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김영욱은 그라운드에 거의모습을드러내지 못하며팬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시즌초반 K리그 데뷔전을 치뤘으나K리그의 빠른 템포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에 박항서 전감독으로부터오른쪽 윙백으로 기용되었지만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게 4경기 만에 2군으로 내려간 김영욱.

팀 동료 지동원이 프로에 완벽히 적응하며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고하는 그는인내를 갖고절치부심, 달라진 모습으로

2011시즌2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향후 전망 :박항서 감독의 후임으로 정해성 감독을 데려온 전남.

비록 수석코치였지만 세간의이목을 받는 국가대표팀을맡아

2002, 2010 월드컵을경험한 이력과 k리그 시절, 하위팀 부천을

2005시즌정규리그 4위에 올려놓은그의 저력을 인정하였다.

지원도 많았다.화려한 영입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k리그에서 인정받는

젊은 피 및 중견급 선수들을 다수 영입하며 스쿼드를 강화시켰다.

그러나현재 5경기를 치룬현재,다소 안 좋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전남.

3라운드홈경기에서 gs를 3:0으로 꺾으며 승승장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조직력 상실에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동원의 골침묵과 미드필드의 압박 상실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출장수를 늘이고 있는 김영욱에게도 분발이 요구되고 있다.

비록 gs에서 골을 넣어 자신의 진가를 확인시킨 그이지만,

이후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팀에 활기를 불어넣지 못하고 있는 점은 다소 아쉽다.

아직까지는 k리그의 빠른 템포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김영욱은 꾸준히 출장하며 경험을 쌓고 있으니 좀 더 경험이 쌓인다면

머잖아 k리그에 완벽히 적응할 거란 생각이 들고, 청소년 대표팀에서는

여전히중원사령관으로 활약중이니,못해도 향후전남의 주전 미드필더로

자리잡지 않을까예상된다.

국가대표는.....좀 더 두고봐야 알 것 같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54)

김귀현(Kim, Gwi-Hyun)

나이 : 22

신장 : 170cm, 60kg

출생 : 전라남도 신안

위치 : 수비형 미드필더(Defensive Midfielder)

클럽 : 벨레즈 사르스필드(Club Atlético Vélez Sársfield)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1부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55)

클럽 경력 : 해성중, 벨레즈 사르스필드 유스(05~09), 벨레즈 사르스필드(2010~)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 없음

소개:2005년경남남해 축구클럽에서 활동했던아르만도 페르난데스 코치의 손을 잡고

아르헨티나로날아가기량을 연마하고 있는추자도 출신의소년.

그라운드를 폭넓게 아우르며 거친 몸싸움을 즐기는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수비 위치선정이 좋은 선수다.

김귀현은 아르헨티나 1부리그팀 벨레즈 유스팀에 입단했으며,

이후 매해약 250명 가량 되는또래 선수들과 경쟁을 해왔다.

그렇게 7년간 경쟁해 온 그의 대한 평가는 놀랍게도현지에서매우 긍정적이다.

무려'아르헨티나 리그 최고의 기대주'로 평가받고 있다.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는 것도 힘든데 그곳에서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받고 있으니 이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게다가 유스 시절 이탈리아의 페루자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하니

김귀현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덕분에홍명보 감독이 이끄는올림픽 대표팀에도 발탁될 수 있었다.

비록 구자철, 기성용 등 국대급선수들의 대거차출 불가로 인한 기회였지만

김귀현은 중국과의 평가전이 열리기 전에 가진훈련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며

평가전에 선발 출장하였으니단순한 해외파 유망주가 아니란 건 확실하다.

호흡을 맞춘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공격 전개의 날카로움은 전혀볼 수 없었지만,

뛰어난 위치선정과볼관리 능력을 보여줘 앞으로도 기대를 걸어볼 만 하다.

향후 전망 : 현재김귀현은 아르헨티나 명문팀벨레즈에서 2군 선수로 활약중이다.

2군에서는 그야말로 군계일학의 플레이를 보여준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냉정하게 따지면 아직 2군에 불과한 선수라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려면

아직 멀었다.중국과의 평가전에서도 수비에서는 나름 빛났지만

공격에서는 전혀 매끄럽지 못했기에조광래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서는

합류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김귀현의 잠재력까지 무시할순 없다.

그는 여전히 유망주이고 현지에서는그가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니

경험이 쌓인다면 향후2~3년 안에잠재력을 깨워 클럽이나 대표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선수가 될 것이다.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부상이나 슬럼프를

극복한다면 그에게기회는 찾아올 것이다. 다만, 클럽에서 부진을 거듭해

방출된다면 극심한 슬럼프에 빠질 가능성이 크며, k리그에 진출한다해도

이 슬럼프를 쉽사리 극복하지 못하고 방황할 것 같다. 무려 7년간 아르헨티나에

있었으니 다시 한국에서 적응하려면 고생많이해야하겠고,

무엇보다k리그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가아무리 아르헨티나에서 활약했다해도

k리그 1군 무대는절대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확실히 기대해볼만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무 것도 검증이 되지 않은 김귀현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56)

윤일록(Yoon,Il-Rok)

나이 : 20

신장 : 178cm, 65kg

출생 :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섀도우 스트라이커(Shadow Striker),윙 포워드(Wing Forward)

클럽 : 경남FC(Gyeongnam FC) - 대한민국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57)

클럽 경력 : 진주고, 경남FC(2011~)

우승 경력: 없음

개인 경력 : 없음

소개 : 오른쪽 풀백 고래세와 함께 경남 유스팀 1세대로 알려진미드필더 유망주.

2009년17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서혼자 3골을 넣으며 팀의 8강 진출을 견인한윤일록은

2011시즌 경남에 전격 입단, 수원으로 이적한 이용래의 공백을 메울 적임자로기대를 모았었다.

기대와는 달리 김태욱이 윤빛가람의 짝이 되었지만, 윤일록은 섀도우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며

팀 공격을 이끌고 있다.

이 선수도 위에 소개한 선수들처럼테크닉과 패스가 뛰어나고 스피드도 빠르다.

동료를 이용한 지능적인 플레이에도 능해팀 플레이가 생명인 프로 무대에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직까지는k리그의 빠른 템포와 동료와의 호흡이 맞지 않아

적응에 애를 먹고 있지만 데뷔시즌부터주전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향후 행보에 기대를 모은다.

향후 전망 : 일찌기 경남 감독으로 활약했던 조광래 감독은 윤일록의 활약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윤일록이 경남에 입단해 좋은 활약을 펼치자,

그는 윤일록의 활약을칭찬하며 대표팀의왼쪽 풀백으로 기용해볼 것임을 시사했다.

이미 홍철과 김영권이 시험대에 오른 바 있는 왼쪽 풀백은 아직까지는 확고한 주전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윤석영은 아직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고 위에 언급한 두 선수는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받았다. 조광래 감독이스트라이커를 풀백으로 기용하겠다는

깜짝 발언을할 정도로 윙백 자리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이때 윤일록이 왼쪽윙백 후보로 거론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왼쪽 윙백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그건 두고봐야겠지만

그가 자신의약점인피지컬을 극복할만큼 수비에 영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이영표가 피지컬이 안좋았음에도 붙박이 풀백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침착하고 영리한 판단으로 수비를 곧잘 해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수비와 더불어

자신의 장기인 오버래핑과 개인기까지 겸비했으니 지난 8년간 이영표를뛰어넘는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갓 프로에 입문한 새내기가 이영표처럼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왼쪽 윙백으로 전환해 평가전 및 국제대회에서기대 이상으로활약한다면조광래감독이

믿고 기용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긴 호흡이 필요한프로도 아니고

한 경기가 소중한 국가대표팀에서 과연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58)

문기한(Moon, Ki-Han)

나이 : 23

신장 : 176cm, 73kg

출생 : 부산광역시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클럽 : g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59)

클럽 경력 : 동명초, 동북중, 동북고, gs(2008~)

우승 경력 : 2010 K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

개인경력 : 없음

소개 : 2008시즌gs에 입단, 기성용의 뒤를 이을구단의중앙 미드필더로

각광받는 유망주. 각급 청소년 대표팀을 거쳤으며,

지금도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런던 올림픽 대표팀에서

중원사령관으로 활약중인 문기한은안정적인 볼배급을 주특기로 하는

선수로,킥이 좋아 짧은 패스, 긴 패스 뿐만 아니라 프리킥, 코너킥도

도맡아 찰 수 있다. 공을 질질 끌기 보다는간결하게 패스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동료와의 협업 플레이를 중시한다. 뿐만 아니라

수비 위치선정도좋아 유사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한다.

하지만 2008시즌 프로에입문한 후벤치와2군을오가며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기량이 완숙하지 못하고 기복이 심한 편이라선발로 뛰기에

무리라고 코칭스태프에서 판단하는 모양이다. 올해 3월까지도 고요한, 최현태에밀려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그러나때마침 문기한이 올림픽 대표팀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이고,

고요한-최현태 라인이 성공적으로 가동되지 못하자 황보관 감독은 4월부터

문기한을 꾸준히 기용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좋은 활약을 보이며우승후보전북을 3-1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는 등 순조롭게 활약하고 있다.

향후 전망 : 프로에 데뷔한 지 4년 만에드디어 빛을 보는 것인가.

최근 문기한이 전북전을 기점으로상승세를 타면서 gs도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자존심을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김호곤 감독이 이끄는 울산과의

홈경기에서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지만 부상으로 신음했던하대성이복귀함으로써

향후 문기한-하대성 조합이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기성용,구자철 등 국대급 선수들의 차출이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2012 런던 올림픽 본선을 치르기 전까지는 주전을 넘어 붙박이로 활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60)

이종성(Lee, Jong-Sung)

나이 : 20

신장 : 187cm, 70kg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포워드(Forward)

클럽: 수원 삼성 블루윙즈(Suwon Samsung Bluewing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61)

클럽 경력 : 계성초, 신평중, 매탄고, 수원 블루윙즈(2011~)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 없음

소개 : 수원 유스 매탄고에서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명으로활약했던미드필더.

우월한 체격을 바탕으로 공중권 장악에 능할 뿐만 아니라 활발한 움직임으로

중원을 지배하며 적재적소에 안정적인 볼배급을 해준다고 한다.

체력과 힘이 달려 몸싸움에 약하다는 평가가 있다.그럼에도

매탄고 출신 유망주 가운데 유일하게 대표팀 경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각급 연령별 대표팀을 거쳤음은 물론,올해 열리는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

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청소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을계기로

수원에서도 입지를다져나가겠다는 각오다.

향후 전망 : 수원 유스 자격으로 우선지명 영입된 이종성은

조지훈과 마찬가지로 윤성효 감독의 지지를 받으며

1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용래, 오장은, 백지훈, 이상호 등 선배들을 이겨낼만한

기량을 아직 보유하지 못해 벤치에 머무르고 있지만,

조지훈과 달리 청소년 월드컵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면 윤성효 감독이 그를 믿고 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주전이 아니라서 그럴 가능성은 조금 희박해보인다.

수원 2군에서 착실히 기량을 쌓아서동료신세계처럼

1군 멤버들의 부진이나체력 저하를 틈타 기회를 잡는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62)

조지훈(Cho,Ji-Hun)

나이 : 22

신장 : 188cm, 80kg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클럽 : 수원 삼성블루윙즈(Suwon Samsung Bluewings)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63)

클럽 경력 : 학성고, 연세대(중퇴), 수원 블루윙즈(2011~)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 없음

소개 : 조지훈은 2011시즌 수원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 일찌감치 윤성효 감독의 지지를 받으며

1군 교체멤버로 기용되고 있는 중앙 미드필더다. 수원 유스 출신이종성과 함께 수원을 이끌

차세대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그는연령별청소년 대표팀을 거친 선수로,

중원 사령관답게경기 조율을 잘하는 미드필더로 알려져 있다.

너른 시야를 바탕으로 패스를 간결하게 처리할 뿐만 아니라,

패스할 때와 드리블 할시기를 잘 파악하는영리함까지 갖추었다고 한다.

다만,90분을 소화할 체력이 부족한 것이 흠이라고 하니 아직까지는 프로에서 활약하기에는

다소 무리다.그럼에도 이종성, 신세계와 함께1군 멤버에 올라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

향후 전망 : 이용래, 오장은, 이상호, 백지훈, 오범석(최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중),홍순학등

국내 정상급 중원 자원을 갖고 있는 수원에서

짧은 시간 내에 이들을 제치고 주전 멤버로 기용되지는 못할 것이다.

오장은과 이용래는수원의선두권 다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고,

재활 중인 백지훈이 30% 부족한 수원의 공격전개능력을 강화시켜준다면

그의 자리는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하지만체력 소모가 큰 현재 전술이라면

어느 정도 기회는 올 것이라 생각된다. 수원이체력 안배 차원에서 오장은, 이용래를

쉬게하고 그 자리에컨디션이 떨어진 백지훈이나 홍순학과 함께조지훈을

중원에 기용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기대 이상으로활약중인신세계가

중앙으로 옮기거나키 크고 왼발이 날카로운양준아가 오범석과 함께깜짝 기용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만 아니라면(현실 가능성은 낮다),

그가 꿈꾸는신인왕 목표에 첫걸음을 띄게 될 것이라 예상된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64)

이승기(Lee, Seung-Ki)

나이 : 24

신장 : 177cm, 67kg

출생 : 광주광역시

위치 : 중앙 미드필더(Central Midfielder)

클럽 : 광주FC(Gwangju FC)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65)

클럽 경력 : 송정서초, 옥과초(전학), 광양중, 금호고, 울산대학교, 광주FC(2011~)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2010 대학축구대회 득점왕

소개 :신생팀 광주의 중원을 이끄는 실질적인 에이스.

광주 태생이고 금호고시절 에이스로 활약했던 선수라광주 지역팬들의 남다른 애정을 받고 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이지만 고교와 대학 시절

각각 MVP와 득점왕에 오른 적이 있는 실력파 선수다.

특히 대학 3학년시절에는 주장 완장을 찰 정도로 리더쉽도 갖추었다.

당시 그를 가르쳤던 이상철 울산대 감독은 "당장 프로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선수"라고

칭찬했고,최만희 광주 감독은 "빠른 이관우를 보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공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다."며 한술 더 떴다. 드리블과 슈팅력이 뛰어난 선수답게득점에 일가견이 있다는

이승기는 그러나 대학 시절부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 탓에 잠재적인 부상을 달고 있다.

올시즌도 개막 직전 가진 상주 상무와의 연습경기에서 부상을 당해개막전을 비롯해

이후 열린 경기에도 나오지 못했다. 다행히 최근 부상에서 회복해 컵대회에 출장하면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향후 전망 : 최근 광주가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신생팀으로서 개막전에 드라마 같은 승리를 챙길 때까지만 해도

신생팀의 돌풍이 기대되었으나 2라운드 이후공수 모두 제 기능을발휘하지 못하며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6라운드 전북과의원정경기에서 6-1로 대패당하며

씻을 수 없는상처를 입고 말았다. 자칫하면부진이오래가게 돼 경기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이승기 한명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풀기 힘들 것이다.아무리 혼자 잘한다고 해도 팀이 못하면자신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창 기성용의 승승장구에승부욕이 불타오르는 시점에서

이러한분위기는 그에게 악영향을 줄 것이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이승기를 비롯한

감독, 코칭스태프, 선수들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한편,학창 시절부터문제가 되어 온 부상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아무리 기량이 좋아도 부상에 허덕이면 선수생명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이승기 본인이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부상에 특별히 신경쓸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꾸준히 활약해준다면팀도 어느새 부진을 극복하고 돌풍의 팀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아래 김기희와 박종우는 2012.8.19.에 작성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66)

김기희(Kim, Kee-Hee)
나이 : 24
신장 : 187cm, 83kg
출생 :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위치 : 수비형 미드필더(Defensive Midfielder), 센터백(Center Back)
클럽 : 대구FC(Daegu FC) - 대한민국 K리그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67)
클럽 경력 : 장평중, 부경고, 홍익대학교, 대구FC(2011~)
우승 경력 : 없음
개인 경력 : 없음
소개 : 이번에 소개할 김기희는 올림픽 대표팀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중앙 수비수로
기억되지만 그의 본 위치는 수비형 미드필더다. 그는 미드필더라는 보직답게
키가 크면서도 나름대로 준수한 패싱력을 갖췄고 수비력도 괜찮은 선수다.
하지만 시즌 중반 대구FC의 핵심 수비수이자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었던
이상덕이 승부조작 혐의로 퇴출되자 그 자리를 대신해 뛰기 시작했다.
뛰어보니 자리를 나름 메꿔주고 있어 지금도 수비수로 뛰고 있는 듯하다.
중앙수비수로서의 그는 큰 키를 활용한 제공권 장악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세트피스 득점력을 갖춘 전형적인 장신 수비수다.
본 포지션이었던 수비형 미드필더 경험도 있어서인지 빌드업도
괜찮은 편. 하지만 본래 위치가 아니어서인지 수비시 크고 작은 실수를
한 두개씩 보여주고 있으며 발도 그렇게 빠르지 않다.
하지만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2011시즌 K리그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수비수로서 올림픽 대표팀에
입성한 것은 확실히 인정받을 만하다. 입성 후 한동안 선발로 출장하지
못했지만 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열린 시리아와의 평가전에서 혼자 2골을
몰아넣으며 승리에 기여했다. 주전 센터백 홍정호와 장현수가 부상으로 낙마하자
그는 예비명단에서 최종명단에 오르는 행운을 맛봤다.
비록 그의 공식 출장은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후반 교체줄장 1분에 불과하지만
이 1분으로 군면제라는 큰 혜택을 얻게 됐다. 김기희는 이 기회를 발판삼아
K리그 뿐만 아니라 해외진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 및 유망주들 - 중앙 미드필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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